지난 15일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성당에서 열렸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영결식장인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을 위해 피츠버그홀 강당에는 생중계 영상이 준비되었다.
성공회대 교목실장 김기석 신부의 “감히 바라옵건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세월호에서 생을 마감한 어린 영혼들, 미처 배움을 얻지 못하고 사망한 수많은 불쌍한 어린 영혼들의 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로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두 시간 가량 진행된 영결식은, 신영복 선생을 성공회대 교수로 초빙한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성공회대 초대 총장)의 조사와 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 고민정 KBS 아나운서,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 고인과 인연이 각별했던 이들의 추도사로 채워졌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단절이 아닌 연대를...”
이날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 근대사는 자유‧진리‧진실‧정의를 무서운 힘으로 내리눌러 사람을 송두리째 파괴했다며 “그 역사의 한 가운데서 선생님은 싸웠습니다. 그 고난의 역사를 넘어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단절이 아니라 연대를, 그리고 분노가 아니라 깨달음을 만들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새 역사는 언제나 변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변방은 공간적인 개념만은 아니었습니다. 머리에게 가슴은 변방이었고 손에게 발은 변방이었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변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 그 곳이 변방 이었습니다”
그는 고인의 생애 마지막 저서인 「담론」에서 인용한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라는 구절을 언급하며 “선생님의 75년 삶 그 자체는 한 편의 담론이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주신 그 언약, 이제 우리가 꽃으로 피워야할 차례 입니다. 오늘은 선생님과의 이별의 자리가 아니라 언약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단호한 결의를 선생님께 바쳐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며 “이제 그동안 미뤄오신 자유로운 여행길을 즐겁게 떠나시길 바랍니다”라는 기도로 마무리 했다.
“당신께서 고전이었습니다”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는 “신영복 선생님은 새로운 해석으로 중국 고전을 설명해주셨는데, 고전의 글귀보다도 선생님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가슴 속에 남습니다”라며 “선생님의 삶과 인품이 바로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는 고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바로 고전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파안대소하는 선생님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습니다.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는 청년 신영복 이었습니다. 또 저희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해주실 때는 우리 시대의 스승 이셨습니다”라며 선생님에게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청년의 패기, 어른으로서의 지혜를 동시에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생전 고인을 인터뷰하며 인연을 이어온 고민정 아나운서는 고인이 생전 ‘서로가 서로에게 나무가 되어주라’고 당부했던 말을 언급하며 “벗이 된 수많은 나무들과 함께 서로 위로가 되어주며 한걸음씩 떼겠습니다. 그 먼 나라에서도 저희를 보아 주시라”고 말했다.
영결식은 고 신영복 교수가 생전 즐겨 부르던 동요 ‘시냇물’을 추모객들이 다함께 부르며 끝이 났다. 운구행렬이 나오자 추모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관 위에 국화를 올리며 신영복 교수가 떠나는 자리를 지켰다.
운구차에 그를 모신 후 유가족과 동료 교수들은 영정을 들고 그가 마지막 생을 보낸 연구실을 찾았다.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수많은 추모객 대부분은 운구차와 장례 버스가 교정을 떠낼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