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쪼개어집니다.
예수께서는 식탁에서 사랑했던 벗들과 늘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의 탄생지가 "빵집"이라는 뜻의 베틀레헴이었고, 태어난 아기를 누인 자리도 가축들의 "밥통"인 구유였다고 합니다. 이제 생의 마지막 몇 시간을 남기고, 예수께서는 명절에 빵을 쪼개서 나누십니다.
그분은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빵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옛날 이집트 제국의 노예들이 힘을 모아 탈출을 감행할 때, 제대로 반죽도 숙성도 못시킨 빵을 대충 구워먹었습니다. 제국의 힘에 짓눌려 있던 삶에서 해방을 꿈꾸며 그 설익은 빵을 나눠먹었습니다. 자유, 평등, 해방, 연대… 그들은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했고, 빵을 나누며 하던 그 실천 가운데에서 신성을 체험했습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그 실천이 힘을 소유하게 되면서 느슨해지고, 이제 물질만능과 탐욕으로 빵을 나누는 감동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사회의 갈 데 없는 이들과 작은 이들과 함께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 하느님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기성 종교권력과 제국의 권력, 그리고 자본의 권력에 의해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시스템으로서의 종교는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권위, 불가침의 권좌에 계신 하느님을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권위도 그렇게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권위주의로 무장하고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하며 그 앞에 고개 숙이지도, 마음을 다해 소통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십니다. 하느님이 인간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을 손수 씻습니다.
종과 노예가 하는 일을 하느님이 하십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시스템으로서의 국가도 권력 내부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위의 불가침성과 신성함을 안보라는 언어로 강조합니다. 그렇게 할수록 현실은 부조리와 비리가 기승을 부리고, 그로 인한 재해에 대해서 국가는 그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들 편에 서시고 가난한 이들 중에 가장 가난한 이로서 빵을 나누십니다.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의 딸, 아들이라고 하면서, 아픔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이제 예수를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과 제국의 군인들이 붙잡아갑니다. 옷은 벗겨질 것이고, 몸은 만신창이로 상처 입을 것이며, 결국 못과 창으로 뚫릴 것입니다. 예수는 빵을 쪼개어 나눴듯이 자기 자신이 쪼개어지게 내맡깁니다. 그분은 빵집에서 태어나 밥통 위에 눕혀졌고 이제 해방절 빵을 먹는 날 십자가 나무에 못으로 고정될 것입니다. 그분은 "나는 죄인이 아니겠지요?"라고 묻고픈 죄인들과 위선자들의 손 위에 순수한 빵이 될 것입니다.
빵이 쪼개어집니다.
제주 강정에서 구럼비가 그렇게 자본과 권력의 이익을 위해 파괴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강정 주민들과 세월호 유족들의 심장도 그렇게 쪼개어졌습니다.
오늘 저녁, 예수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은 빵입니다. 여기에는 종교의 권위도, 제국의 야욕도, 자본의 탐욕도 없습니다. 무고한 세월호 아이들과 그 가족들처럼, 신비로운 구럼비처럼, 역사 안에서 무수한 고난을 겪어온 우리 민중처럼, 예수는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빵이 되어 먹힙니다.
그렇게 빵과 하느님이 쪼개어집니다.
거짓과 위선이 낀 우리의 심장이 두 조각으로 나뉩니다.
하느님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자기를 강화하는 이들도, 약한 민중을 짓밟으며 자본과 권력을 키워온 이들도, 쪼개어진 빵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그들과 우리 모두는 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축성된 빵 앞에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가난하고 억압 받는 이들에게는 고개는 커녕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이미 단죄 받았습니다.
더 큰 자본과 더 강한 권력 앞에서 비굴하면서, 표를 찍고 세금을 내는 서민들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이미 단죄 받았습니다. 수도자, 성직자들은 가서 기도나 하라고 하면서, 세상이 빵의 복음을 짓밟는 것에 대해 타협하고 침묵을 지키는 이들도 역시 이미 단죄 받았습니다.
하느님이 빵이 되었다는 그 복음의 진리가 그 기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상대 앞에 무릎을 꿇어 발을 씻겨주고 빵을 먹읍시다. 참된 영성체, 즉 하느님과의 일치는 바로 여기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실천,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이 빵의 복음이 되어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합시다.
우리 모두 빵이 됩시다. 십자가의 하느님이신 빵이 됩시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고 평화의 길이며 예수의 길임을 잊지 맙시다.
아멘.
임 루피노 :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서울에 살고 있으며, 수도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