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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강남에선 몽당 가짜야"
  • 전순란
  • 등록 2016-02-12 10:50:35
  • 수정 2016-02-12 16: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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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1일 목요일 흐림


손님들이 왔다가면 여기저기 남겨진 그릇들이 다시 한 번 손님들을 생각하게 한다. 보스코가 종류가 같은 접시, 같은 도기 잔, 같은 유리잔을 찬장 제자리엔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다.


모니카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 당당한 여인이다. 처음 오는 손님들이 으레 어느 음식점에서나 하듯이 약간 눈을 내리뜨고 “어디, 어찌하나 보자, 소문대론지...”라는 투로 퍼져 앉았다가 자기가 음식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정성스레 하는 대접에 차츰 자세를 고쳐 앉고 음식마다 앞 접시가 바뀌어 대여섯 차례를 지나면서 부엌에 접시들이 산처럼 쌓이는 것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에는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들을 하고 “시간 있으면 설거지라도 해드릴 텐데...”라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친정동생처럼 집안 아제처럼 태도를 바꾼단다. 하얀 식탁보에 빨강 토마토 소스가 떨어지면 미안해하면서 쩔절매는 남정들도 미소를 자아내고....


그니는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한 테이불만 받기로 하고나서부터 “일을 할수록 통장의 잔고가 준다.”고 푸념하기에, “모니카, 그대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고 돈을 쓰면서 역할극을 하고 놀이를 즐기는 중인데 통장에 돈이 쌓이겠어? 그냥 그대의 삶을 즐겨요.” 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제 유무상통에서 큰이모 생일을 맞은 세 자매: 조영옥(88), 조선옥(90), 조정옥[엄마](95세)


설이어서 과자 상자에 예쁜 종이를 깔고 건포도쿠키, 호도쿠키, 유자쿠키를 보기 좋게 담아서 청담동 둘째 이모한테 세배를 갔다. 사촌 여동생들이 내 선물에 우호적이어서 다행이다. 이모부가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시고(막내이모부만 살아계시고 우리 친정아버지를 포함해 위로 세 분은 그 비슷한 연세에들 돌아가셨다), 네 딸 중 큰딸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았으니 이 집은 그야말로 여인천하다.


그 집에서 제일 인기 있기로는 우리 호천이다. 우직한 호천이가 아들처럼, 오빠처럼 그 집에 들르면서 남자가 할 일을 돌봐주니까 그렇겠지만, 늘 함께 다니면서 소리 없는 미소로 남을 편하게 해 주는 올케의 배려가 사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하다.


보스코를 치과에 데려다 주고 그 길로 청담동으로 가서 두 시간만 놀고 오겠다던 길이 밤 10시가 되도록 자리를 못 떴다. 둘째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전문대 교수를 하고 있는데, 강북에 살고 지리산에 사는 이 언니가 몹시 부럽단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소름이 끼치더란다. “글쎄, 이사를 와서 떡을 돌리면 비데오폰으로 내다보면서 문도 안 열어준대. ‘그깟 떡 누가 먹냐?’, ‘전세 사는 주제에 무슨 떡을 돌리느냐?’며 대놓고 무시한대.” 평수 큰 아파트일수록 서로 마주보는 출입문을 드나들면서도 인사도 않고 닭이 소 쳐다보듯, 소가 닭 쳐다보듯 하더란다. “인사 없이 민둥민둥 같은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경우가 허다해. 갑자기 돈 좀 벌었다 하면 인간으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내던진 표정들을 하게 되나 봐. 심장이 빠져버린 로봇인간들 같아.”




교회에서도 구역모임을 하는데 “이사람 저사람 집에 오는 게 귀찮으니 교회에서 하자!” “음식점들도 겉은 화려하고 뻔쩍거리지만 손님들 허세가 많은 곳일수록 음식의 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터무니없어.” “강남에선 몽당 가짜야. 집도 옷도 얼굴도 먹는 것도 몽땅 허세야.” 청담동에 살면서도 피가 통하는 이웃을 그리워하는 그니의 눈망울을 보면서 “이 동생은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것을 가르치는 교수님이겠구나!” 싶었다.


서둘러 개성공단을 폐쇄한 이 정권을 보면 전쟁으로 남북이 몰살하지 못해 안달 난 것 같다. 강북으로 돌아오는 길, 한반도 전쟁이 미국이나 일본에게는 강 건너 재미있는 불구경이겠지만, 강남의 있는 기득권층도 결국 강북의 가난한 서민들도 함께 몰살할 텐데 하는 걱정을 털어버리지 못하겠다.


재작년 한국을 방문하고 떠나던 비행기에서 (한국 와서 보니까)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했네요.”라고 탄식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제단이 엊그제 설날밤에도 광화문에서 시국기도 미사를 드린 것은 까닭이 있다.




설날 밤 광화문 시국미사에 보스코의 누이 사라 수녀가 보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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