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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총신대 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 지유석
  • 등록 2016-03-11 16:13:12
  • 수정 2016-03-11 16: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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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교회 전통에서 여성은 늘 변방에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개혁교회 전통에서도 여성의 지위는 별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무척 역설적이다. 예수의 공생애 기록을 살펴보면, 여성들은 늘 예수와 가까이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갈 때, 한 무리의 여성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예수께서 숨이 끊어졌던 순간에도 여성들은 자리를 지켰다. 예수의 무덤으로 먼저 달려간 이들도 여성이다. 


남성들은 어땠을까?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을때, 자신들이 차지할 자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데 힘겨워하자 로마 군인들은 마침 근처에 있던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지우게 한다. 구레네 시몬은 무척 못마땅했는지 불평으로 일관한다. 또한 예수가 죽음을 당했을 때, 제자들은 예수와 한 패라는 혐의를 피하고자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 


이런 사실들은 그리스도 교회 ‘제도’가 생기면서 조용히 감춰졌다. 그뿐만 아니다. 교회 제도 안에서 남성들은 교권을 움켜쥐었지만 여성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 같은 전통은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느 신학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남자들은 입으로 큰소리치고 여자들은 말없이 실천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 김근수, <슬픈 예수> 중에서 


▲ (사진출처=총신대학교 홈페이지)


김영우 총장, 최근 사태에 해명해야 


새삼 여성의 지위를 화두로 꺼낸 이유는 총신대학교에서 여성 목회자 안수를 위해 기도한 A 교수와 여성학을 강의하던 강호숙 박사를 강의에서 배제한 일 때문이다. 사건을 요약하면 지난 해 12월 이 학교 여성총동문회 송년회에서 대표기도를 맡은 A교수는 여성안수를 언급했다. A교수가 공개한 기도문 중 일부다.


“하나님 저희 여동문 회원들은 교회에서 혹은 각자의 사역지에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평등과 자유와 사랑이 넘쳐야할 교회와 교단에서 오히려 차별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 여사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기에 오늘도 눈물을 삼키며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충성스럽게 사역하는 주님의 여종들을 위로하여 주옵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길을 따라가는 그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들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여 여러 가지 사역에 제한을 받고 있는 현실을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오니 속히 이 교단에서도 여성들에게 안수가 이루어지게 하여주옵소서. 교단과 교회들의 각종 문제들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해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이때에 여성 목사들이 드보라 같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스라엘이 가장 어려운 때에 사사로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 드보라처럼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 여동문들이 드보라처럼 일어나 다시 교회에 부흥의 불을 일으키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길을 열어 주시고 사용하여 주옵소서.”


송년회 석상엔 이 학교 김영우 총장이 배석해 있었다. 김 총장은 기도 내용이 못내 못마땅했던 것 같다. 김 총장은 “준비해온 설교를 대체하겠다”고 밝힌 다음, “여성안수는 안될 말”이라고 못박았다. 김 총장의 설교는 총신대를 운영하는 예장합동 교단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예장합동 교단은 여성의 목회자 안수를 금지한다. 


이후 A교수는 강의 배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이어 강 박사도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 강 박사는 학부와 평생교육원에서 각각 ‘현대사회와 여성’, ‘한국사회와 여성문제’ 등 여성학 관련 강의를 해왔고, 여성 리더십을 강조해왔다. 


김 총장은 한 교계 언론을 통해 “총장은 강사 배정에 간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학교 관계자는 김 총장이 강사 배제에 깊숙이 간여했다고 전했다. 강 박사 역시 3월10일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폐강 연락을 받으며 학교 인사로부터 ‘총장이 두 사람을 빼라고 했다’는 발언을 들었다”고 전했다. 


만약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태는 무척 심각해 진다. 일단 학교 행정이 총장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 됐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미래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제도적으로’ 성차별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한 사람의 기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힘으로 이를 막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정신과 어긋나 보인다. 


이와 관련, A교수는 자신의 SNS에 “여동문의 염원을 담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을 문제 삼아 일을 이렇게 일파만파 키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설교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못하게 막는 것이 정말로 옳은지 묻고 싶다”는 심경을 남겼다. 한편 강 박사는 각각 지난 달 26일과 이달 2일 학교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공개사과와 성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총신대가 속한 예장합동 교단은 전병욱, 오정현 목사 감싸기, 가톨릭에 대한 ‘이교’ 규정,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동 등 갖가지 오명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 와중에 이 교단 목회자를 양성하는 총신대마저 말썽이니 교단 체면은 말이 아니게 생겼다. 특히 총신대의 여성차별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03년 당시 총회장이었던 고 임 모 목사는 총신대 채플 시간 설교를 통해 “우리 교단에서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고 했다. 임 모 목사는 더욱 놀라운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라는 여성 비하 발언을 해 여론의 빈축을 샀다. 게다가 2014년에는 여학생들의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과정 입학을 불허했다가 반발을 샀고, 결국 철회하는 촌극을 빗기도 했다. 


일단, 김 총장이 직접 나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한 점 의혹없이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사태는 총장 심기를 거스른 몇몇 교수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한데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무엇보다 개교회에서 여성 교역자를 기껏해야 남성 목회자의 보조역할에만 한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이 여성을 홀대해 온 건 아닌지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총신대 사태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위치로만 여기는 다른 교단 신학교나 개교회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 이 기사는 가톨릭프레스와 베리타스에 동시게재 합니다. 


[필진정보]
지유석 : 베리타스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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