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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근수] 가난한 사람들 없이 교회 없다
  • 김근수
  • 등록 2016-03-25 10:42:56
  • 수정 2016-03-25 17: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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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부활절에 느끼는 심정이지만, 올해 부활절은 더 씁쓸하다. 세월호 2주기가 다가오고 총선이 눈앞에 있지만 한국 사회는 더 어두워졌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정도가 아니고 사실상 반동의 시대가 오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되는 말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어렵게 되는 말든, 한국 천주교회는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성당을 짓고, 골프를 즐기는 사제들은 수두룩하며, 신자들은 사교 모임을 여유 있게 즐기고 있다. 


예수를 생각하면 가슴 설레고 행복하다. 교회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예수와 교회가 그리 거리가 멀던가. 사회와 교회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사는 것 같다. 사회는 어두운데 어찌 교회는 평안할 수 있을까. 


어두운 이 시대에 그리운 분이 여럿 있다. 그중 한분은 교황 바오로 6세다. 회칙 ‘80주년’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조국의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생각의 틀을 정하고 행동을 위한 판단과 지도의 원칙을 정해야 한다”고 적절하게 말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해방이 필요한 사람들 안에서 구체화된 교회와 일치하라”는 교훈을 전하면서 사목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교리, 교회 희망, 교회 임무, 교회 전례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와 전례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고마운 말씀인가.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부활을 맞아 이런 글을 자주 묵상하였다. ‘Gloria Dei, vivens Homo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류의 적어도 70%를 차지하는 오늘 세상에서 우리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Gloria Dei, vivens pauper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신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다.


80년 3월 23일 사순절 제5주일에 로메로 대주교는 마지막 주일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활절에 영원한 생명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사순시기에, 성주간에 십자가와 희생과 순교로써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로메로 대주교의 말을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다. 한국교회는 십자가와 희생과 순교를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십자가와 희생과 순교를 기꺼이 맞이하는 주교와 사제는 어디 있는가. 순교 영성 없는 순교자 현양이 무슨 소용인가. 


십자가와 희생과 순교는 우리의 길이요 기쁨이다. 부활 후 예수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마태오 28,10) 말했다. 역사의 현장으로 다시 가라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곁으로 가라는 말이다.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현장이다. 가난하지 않은 교회가 도대체 교회일 수 있다는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 없이 교회는 없다 (Extra pauperes, nulla ecclesia).


악의 세력에 저항해서 싸운 예수는 십자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반대하고 방해하는 세력과 싸우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알 수도 맛볼 수도 없다. 부활을 말하려는 자 먼저 악의 세력에 저항하라. 악의 세력에 저항하지 않고 부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고 예수를 외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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