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 앞날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 내가 여러분에게 할 말이 많지만, 여러분이 지금은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소.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여러분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오 »라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철딱서니 없는 자녀에게 많은 부모들이 이런 식의 말을 한다: « 너도 엄마가 되어 봐라. 너도 아빠가 돼 봐라. 그러면, 우리 마음 십 분의 일이라도 알 거다 ». 심지어 신부들도 신학생들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하기도 한다: « 신부 돼 봐라. 그러면, 우리 마음 조금이라도 헤아릴 거다 ». 어릴 적에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고 막상 그 처지가 되어 보면, « 아,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지 »하면서, 부모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2012년에 방영된 개그 프로그램에서 « 갑을 컴퍼니 »라는 코너가 있었다. 회사 생활하는데 있어서, 누가 갑인지, 누가 을인지만 잘 알면, 회사생활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처세술을 비꼰 프로그램이었다.
한번 물어 보자. 자녀와 부모, 누가 갑일까? 겉으로 보기엔 부모가 갑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부모가 을이고, 자녀가 갑이다. 때로는 갑을 넘어 « 자식이 웬수 »의 경지에 이른 가정도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자식 이기는 부모에게는 대부분,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고집불통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준다.
그러면, 하느님과 인간, 누가 갑일까?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세상의 창조주이시니까, 겉으로 보기엔 하느님이 갑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갑이고, 하느님이 을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머무르신 강생 사건은 영원한 ‘갑’인줄 알았던 하느님이 당신이 하실 수 있었던 모든 ‘갑질’을 버리시고, 당신 스스로 ‘을’이 되신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복음도 ‘을’이신 하느님께서 ‘갑’인 인간에게 봉사하시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스승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는 제자들에게 성령까지 약속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봉사하시려는 예수의 모습에서 자녀를 위해 자신의 꿈도 접고, 펼쳐 보이려고 했던 날개마저도 꺾으면서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의 모습이 겹친다.
더불어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서,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지난 해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된 자녀들을 위해, 보상금이니, 특례입학이니, 그런 악마의 유혹을 용감히 물리치고, 오직 진실 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을 바라는 그 부모들의 모습도 겹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자녀를 위해 기꺼이 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런 부모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많은 영혼들을 정화시키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성령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씀씀이에 나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나의 영혼이 정화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이균태(안드레아) : 부산교구 울산대리구 복산성당 주임 신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