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9일 토요일, 흐림
운전은 내가 하는데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고나면 피곤해서 쉬고 있는 사람은 보스코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다. 찬성이 서방님은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펄쩍뛰면서 “무슨 부부가 일심동체냐? 엄연히 이심이체다. 한 침대 속에서도 서로 딴 생각을 하는 게 부부다”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설마 라고 반신반의했는데 요즘은 서방님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늘 긍정주의자(?)다. “잘 될 꺼야” 아니면, “잘되는 과정일 꺼야” “저러다가도 결과는 잘 되지 싶어” “잘 돼간다” “잘 됐다”라고 생각하고 또 말한다. 어찌 보면 철없고 무책임하고 뭘 몰라서 그런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보스코는 늘 의심을 한다. “내가 의심한다면 나는 존재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제대로다. (본 뜻은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회의론을 반박하는 명제란다) 철학 교수답다. 진행되는 일에 깔린 배후라던가 앞으로 전개될 모든 것을 저울질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어이 1퍼센트의 의심을 찾아내서는 좌절한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 200석을 넘겨 자기들 멋대로 개헌을 할 꺼라고 선거기간 내내 괴로워하더니 결과를 보고는 노코멘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도 똑같았다. 정씨의 집 앞에서 떨던 노후보를 보고 밤을 꼬박 새고 투표당일은 하루 종일 말도 안했다. 출구조사 시간에 그와 함께 있기가 괴로워 내 초록색 마티스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이회창을 이긴 노무현! 그건 바로 비관주의자 성염을 이긴 낙관주의자 전순란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을 떠나서 보스코의 절망을 깨워준 노무현 후보가 정말 고마웠다. 집으로 쫓아올라가 선거 내내 밤잠 안자고 괴로워한 일에 대한 참회각서를 보스코에게서 받았다. 다시는 정치문제로 자신을 괴롭혀 아내를 힘들게 안하겠다고!
그런데 요즘 보면 아침마다 길고 좋은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사제, 수도자 중에 세상과 동떨어져 신선처럼 착하고 꿈같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면에서는 정말 살아 있는 성인인데 트럼프의 승리를 반기는 사제, “박근혜가 어때서?”라는 수녀를 만나면 ‘도덕적 인간의 비도덕적 신앙심’을 보는 절망을 느낀다. 얼마 전 지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 글에서 시사성을 읽고 마음 상할까봐 그런단다.
내 생각은 다르다. 누구나 진실 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 한다. 사회악에 대한 침묵은 묵인이자 공범이다. 까칠한 베네딕도 교황님마저도 “정치는 사랑의 표현이다. 사회적 사랑의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라고 하셨다. 정치가 잘못되어 나라가 이 꼴인데 자기만 초연한척 딴 소리만 하는 태도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웰빙 종교’ 내지 ‘웰빙 영성’이라고 질타하셨다. 그런 의미에서는 비록 듣고 견디기에 좀 힘들더라도(부창부수라 하겠지만) 나는 보스코의 태도가 옳다고 한 표 던진다. ‘가톨릭신문’에 실린 보스코의 ‘특별대담’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
오후 2시 실상사 앞 ‘느티나무까페’ 앞에서 ‘살래장’이 열렸다. ‘작은학교’ 학생들이 만든 친환경치약과 샴푸, 각자가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과 여러 물건, 헌옷가지도 걸거나 탁자위에 펼쳐놓고 손님을 맞았다. 두 꼬마가 자기들의 오줌으로 키웠다며 검정쌀을 사라고 광고를 했다. 노재화 목사님 부부도 실속 있는 옷을 사서 결혼 후 첫겨울을 준비했다. 시골장 같이 왁자지껄 재미있는 장날을 뒤로하고 심야전기 보일러를 고치러 온 이부장을 만나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빵기는 아직도 에티오피아에 출장 가 있는데 제네바의 손주들은 엄마의 보살핌으로 곱게들 커간다. 제네바에서 바라보이는 쥬라기산맥에 하얗게 눈이 덮였다.
오늘도 주말집회 촛불이 전국적으로 타올랐다. 광화문 집회가 50만명으로 줄었지만. 친여 집단의 맞불집회도 있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 모인 1만명만 하야반대고, 국민의 나머지 4999만명은 “박근혜 하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