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네트워크준비위원회 포럼, “한국가톨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 내용을 5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 편집자 주
“그리스도교 창립자는 세상을 잘 몰라서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교들은 성당을 짓고 교구를 운영하면서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기면 만사형통이란 이치를 터득했다. 우리 주님만 그 사실을 몰랐다”
교회 원로들에게 한국 가톨릭교회의 방향을 묻는 포럼이 11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 총평에서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와 김병상 몬시뇰은 원로가 바라본 한국 교회의 미래를 전망하며, 교회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신앙인들을 격려했다.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을 개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소개하며 정형화된 한국 교회 안에서 쇄신을 외치는 신앙인들을 격려했다. 특히 향후 한국 교회의 중심이 성직자에서 평신도로 이동하리라 전망했다.
“하느님과 재물, 함께 섬길 수 없다”
먼저 성염 전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를 소개하며 총평을 시작했다. 교황은 국제 언론에서 ‘프란치스코 효과(Francis effect)’로 불릴 정도로 교회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살인경제’로 평가했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돈을 쫓는 종교인들을 우상 숭배자라고 지적하며 회개를 권고했다.
성염 전 대사는 “교황은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때 교회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교황청 재정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많은 종교인이 교황에게 돌직구를 맞은 기분일 것이다”라며 “하지만 교황의 쇄신 투쟁은 외롭고 위태롭다. 교황청 재정 비리를 공개하기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사례도 있다. 그래서 교황은 식사도 80여 명의 주교와 함께 공동 식당에서 한다”고 말했다.
성 전 대사는 교황의 방한 일정을 되새기며 한국 교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교황의 방한은 세월호로 채워졌다. 로마에서 한국 주교단을 다시 만날 때도 ‘세월호는 어떻게 됐느냐’고 먼저 물었다”라며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서명에 한국 주교들은 선거철 지도처럼 나뉘었다. 서쪽에는 서울대교구가 서명하지 않았고 동쪽에서는 안동교구만 서명했다. 이것이 한국 주교단,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고 지적했다.
“교회 비판은 희망을 주머니에 넣는 것”
성 전 대사는 “대전교구 어떤 신자가 ‘신부님은 평신도가 낸 돈으로 월급을 받으니, 세상의 평신도에게 도움이 되는 강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구 희망원이나 인천 성모병원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21세기는 평신도 시대다. 그것을 나는 국민 사도직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과거 교육과 의료, 자선사업을 독점했고, 상황적으로 독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평신도로 이뤄진 국가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회가 수행했던 역할의 대부분이 평신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성 전 대사는 “유럽에서는 수도 사도직이 끝나간다. 살레시오 학교와 병원, 각종 사회복지 시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국가로 넘어갔다”라며 “어쩌면 성령은 평신도가 커졌기 때문에 이제 성직자와 수도자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셨는지도 모른다. 운영할 성직자가 없기도 하지만 평신도가 국민 사도직으로 그 뜻을 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포럼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 한국 교회 역사상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것은 오늘 포럼이 처음일 것이다”라며 희망원과 성모병원 사례발표에 대한 총평을 시작했다.
그는 “꽃동네와 희망원, 가톨릭계 병원들은 소규모로 전환돼야 소외된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의 의료기관을 소규모 1차 의료원으로 권고하는 이유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국 대형병원과 경쟁하는 성모병원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희망원 문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많이 닮아있다. 학교를 자퇴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논리가 운영권을 반납했으니 아무런 죄가 없다는 논리다”라며 “그 안에서 죽어간 수백 명의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과 죄의식을 교구의 태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했다.
“망치를 들고 그릇을 깨라”
“사람들이 큰 그릇에 울고불고 절을 한다. 가까이서 보니 오물 천지고 역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데 그 안에 거룩한 물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망치로 큰 그릇을 깨트린다. 그러자 거룩한 물이 땅으로 스며든다”
성 전 대사는 이어 교회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격려하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잘못으로 점철된 역사와 문화의 한국교회라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으므로 용기를 내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성 전 대사는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 쇄신을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소외당해왔다. 성직자와 수도자, 교회 학자와 신자도 결국은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에 <가톨릭프레스>나 <가톨릭뉴스지금여기>와 같은 언론은 소외당하게 된다”라며 “하지만 여러분과 같은 언론이 있어서 성직자들이 두려워한다. 여러분은 용기를 내서 오물 담은 그릇을 망치로 깨트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가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단 하나,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원을 운영했고 우리가 희망원을 운영했다고 그래서 책임지는 것이다”라며 “탈탈 털고 성당을 안 나가면 그만이지만, 교회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희망을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제단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교회 쇄신을 위해 나서는 단체들은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서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는 꼭 필요하다. 서로 제각기 배척하고 무시한다면 이를 좋아할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십자가를 올바로 지고 갈수록 소외당하고 외롭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에서 딸랑거리는 금 십자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다. 어깨에 지고 가야 할 만큼 힘든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다”고 덧붙였다.
“교회 민주화 이뤄질 때 주님의 소명의식 꽃 피운다”
김병상 몬시뇰은 신앙인들이 국가 민주화를 염원하는 마음처럼 교회 민주화를 이루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김 몬시뇰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대통령이 무당의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참된 민주화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끄럽고 안타깝다”라며 “하지만 우리가 참된 민주화를, 그리고 이 땅에 참된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에는 고통이 반드시 따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참 뿌리는 순교 역사에 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전하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라며 “오늘 포럼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교회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논리를 지녔다고 해도, 기도의 내용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포럼 전반에 걸쳐 나온 이야기의 핵심은 교회 쇄신이다. 교회가 쇄신해야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살길이 열린다. 쇄신해야 예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또한 전할 수 있다”라며 “국가 민주화가 이뤄져야 국민의 인권이 향상되듯이 교회도 쇄신을 통한 민주화가 이뤄져야 하느님 백성의 소명이 존엄하게 꽃필 수 있다”며 총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