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로메로 이야기 3
  • 이상호 편집위원
  • 등록 2015-05-18 16:14:48

기사수정



* 라디오 강론

 

로메로는 같은 시대를 살던 그 누구보다도 빨리 매스 미디어의 힘을 간파했다. 당시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영향력 있는 매스 미디어는 라디오였다. 그는 복음 전파에 라디오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일찍이 알아차렸다. 교구는 다섯 개의 방송국과 하나의 주간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 교회는 잘 차려입은 부유한 신자들이 차지했고, 신부들은 그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고,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뒤로 밀렸다. 농촌이나 좀 떨어진 지방에는 교회가 멀리 떨어져 있어 미사 참석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농민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다. 


로메로는 이 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의 일요 강론을 전달하는 방송국이 교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민중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사실상 교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믿음에서 그는 죽을 때까지 라디오에 많이 의존했고, 이를 그의 사목의 기둥으로 삼았다. 인터넷 활용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 현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를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는 그는 앞서 나갔다. 

 

그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는 이들을 대부분 매주 엘살바도르 전역에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강론을 통해 모았고, 이끌었다. 1시간 정도 계속된 매주 일요일 방송 강론에서 그는 실종자들, 고문 피해자들, 살해당한 사람들 등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 방송이 얼마나 중요했고 인기가 있었던 지에 대해 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주교의 일요일 강론은 엘살바도르에서 현재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뉴스원천이었다. 아마 전국적으로 가장 청취율이 높은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방송국이 온전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습격 공격을 받았고, 갖가지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강론 도중 갑자기 방송이 끊기거나, 언제 방송국 자체가 폐쇄될지 알 수 없었다. 위험은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로메로는 어느 날 라디오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그들은 이 라디오 방송을 빼앗아갈 것이고, 우리를 말 못하게 하고, 신부들과 주교들을 죽일 것이라고. 그러면 당신들은 사제 없이 홀로 남게 되는데, 그때 여러분은 하느님의 마이크가 되어야 하고, 여러분 하나하나는 예언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간곡한 부탁이기도 했고,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 깊고 강력한, 그래서 그를 생각할 때마다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그 유명한 방송강론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지 못하는 군인들에게 명령 불복종 아니 ‘반란’을 명령한 살해 전날의 강론이다.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에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한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해가는 고통으로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그는 또 교구 주간지인 Orientacion에 매주 고문과 억압의 구체적 사례들을 실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리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1966년 이 신문의 발행인에 취임했을 때 이 신문은 당연히 매우 보수적이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sgmin302016-04-01 23:02:57

    그래서, '팟캐스트 가톨릭 프레스/ 주권방송 가난한 교회를 위한 시대의 징표/ 쇼 개불릭'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