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는 15일, ‘촛불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국 포럼을 열고 ‘촛불민심’의 한국 현대사적 의미를 살펴보고 향후 나아갈 방향과 실천과제를 모색 하는 시간을 가졌다. 포럼의 내용을 2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촛불집회로 박근혜 정권의 퇴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촛불민심’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촛불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시국 포럼을 열고, 발제를 통해 ‘촛불민심’의 한국 현대사적 의미를 살핀 후, 학계와 사회 각 분야 활동가들과 함께 향후 과제를 나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촛불과 광장’이라는 주제로 발제했으며,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김언경 민주언론 시민연합 처장,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정진우 NCCK 인권센터 소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NCCK 총무 김영주 목사는 “이번 시국 포럼은 시민단체와 함께 촛불 민의의 본질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살피기 위한 자리”라며 “광장의 촛불을 역사와 삶의 부활로 이어가기 위한 실효적이고 지속 가능한 실천방안을 함께 모색해보자”고 말했다.
이날 포럼의 사회를 맡은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나라를 바꾸고 있는 촛불민심이 실질적인 시민혁명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사 속에 드러난 민주주의의 과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광장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역사적인 상황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
강 교수는 “30년 전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를 끌어냈을 때 모두가 기뻐하고 새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많은 촛불과 집회가 일어났고, 또한 좌절했다”라며 “오늘 이 자리는 역사적인 것을 거슬러 올라가 그동안의 촛불을 반성하고 점검해, 또다시 실수나 퇴행이 없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포럼의 발제도 현대사 역사학자를 모셨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어떤가요?”
세계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감옥에 보낸 나라는 없다. 이제 현직 대통령을 보내려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러나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가 됐냐고 물으면 그 노무현이 바위에서 떨어질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이면서 사회운동가인 한홍구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와 관련한 주요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독재와 억압, 사회개혁의 기회와 그것을 머뭇거렸을 경우 진보 세력이 떠안아야 했던 역사적 책임과 절망 등을 설명했다.
한홍구 교수는 “대한민국은 두 번이나 민주주의 대통령을 뽑은 짜릿한 경험이 있지만, 최근까지 우리는 역사적 퇴보를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과거 우리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어떻게 날렸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실패의 경험을 되새겨야 지금 타오르고 있는 촛불의 불씨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한 교수는 현재 촛불민심의 동력을 지난 4월 13일에 열렸던 총선에서 찾았다. ‘헬조선’, ‘수저론’ 등의 절망적인 사회를 바꿔보자는 국민의 염원이 총선을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불리는 4월 총선은 지역감정으로 인한 분열의 문화를 극복하고 국민간의 믿음과 신뢰를 회복시켜, 지금의 촛불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먼저 이 ‘헬조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헬조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과 재산이 세습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 했는데, 그 개혁이 실패한 지 7년 만에 ‘헬조선’이란 말이 청년들의 입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국 역사의 흐름을 ‘7년의 변화’로 엮어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만 7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4·19혁명 ▲새로운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며 10월 유신으로 독재체제를 지키려던 박정희가 7년 만에 총에 맞아 죽은 것 ▲광주 시민군의 시신이 쓰레기차에 실려 나가며 처참하게 패배한 지 7년 만에 일어난 6월 항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현대사 안에서 개혁의 기회를 놓친 사례들을 설명하며, 개혁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을 경우, 그에 대한 대가가 매우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IMF가 재벌개혁을 요구했고 재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목을 내놓은 상황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을 해체하지 못했다. 재벌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니까 그 이후에는 재벌이 국민을 개혁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해 통합진보당 해체를 지켜봐야 했고, 미선이·효선이 여중생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해 죽어가는 세월호 아이들을 지켜만 보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친일파를 척결 못하자, 오히려 친일파가 국민을 척결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게 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라며 “이번 촛불민심으로 인해 박근혜와 최순실, 우병우가 감옥에 간다고 해도 그 세력을 없애지 못하면 국민은 다시 역공을 당할 것이다”고 말했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선장은 도망쳤지만 22살 직원은 ‘승객이 다 대피해야 선원이 나간다’며 침몰하는 배에 남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줬다. 그 직원은 매점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직원이었다.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세상은 상식적인 국민이 직접 사회를 이끄는 세상이 돼야 한다.
한 교수는 촛불민심 이후의 과제로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정치구조의 변화를 들었다. 죄가 드러난 몇몇 표적을 중심으로 개혁을 이루는 것은 현대사 속에서 실패해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70만 대군을 가진 나라가 세월호 유리창 하나를 못 깼다. 조선업을 자랑하는 나라가 침몰하는 배를 지켜봐야만 했다”며 “그러니 국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이게 나라냐’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에서 촛불을 밝혔다. 언제까지 국민이 거리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표출된 국민의 정치참여 의식을 수용할 그릇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은 국민이 만들어준 좋은 기회를 지금까지 다 말아먹었지만, 국민은 다시 광장에 섰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개혁을 못 했다. 이제는 그만한 사람도 없다”라며 “앞으로의 개혁은 유능한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시민의 의지와 뜻이 정치에 반영되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촛불은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촛불은 우리 삶의 현장 곳곳에서 켜져야 한다. 이제는 5년짜리 대통령에게 민주주의의 생존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라며 “무엇보다 구세력의 해체가 중요하다. 적의 생명은 다 죽어가는 듯 보여도 매우 강하다. 국민이 끝까지 관심을 두고 부조리한 권력남용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감시하고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