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가 해운대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천주교 자선아파트’(이하 자선아파트) 부지를 매각한 것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운대 지역 거점 본당인 해운대성당과 맞붙은 부지를 교구가 신자들 모르게 매각 결정했기 때문이다.
교구는 자선아파트가 해운대 성당과는 연관이 없고, 부지 매각 과정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신자들은 아파트와 성당이 역사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고, 건물 공사가 진행될 경우 오래된 성당 건물에 부담이 간다며 교구 독단으로 결정된 이번 매각 계약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교구는 지난 9월 7일 해운대구 중동 자선아파트 1564㎡ 면적의 부지를 부동산개발 업체인 주식회사 씨앤티 개발에 매각했다. 매각된 부지에는 지상 36층, 지하 4층 규모의 오피스텔 2개 동이 세워질 예정이며, 11월 4일 부산시의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교구는 이에 대해 11월 22일 홈페이지를 통해 처리 경위를 밝혔다.
교구의 경위서에 따르면 자선아파트는 토지소유권은 교구가, 건물소유권은 거주민이 각각 가지고 있어 재개발이나 정비사업이 진행될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해운대를 포함한 5개 자선아파트에 대한 매각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구 원로사제 배상섭 신부의 증언을 요약해 ‘당시 자선아파트를 지었던 것은 해운대 성당과 별개의 사항’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아파트와 성당은 물리적으로 붙어 있을 뿐, 실질적인 연관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2일 해운대 자선아파트 주민대표가 주식회사 씨앤티개발과 함께 교구청을 방문해 토지 매각을 요청했다”며 이번 매각 계약이 아파트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진행된 것임을 강조했다.
교구가 밝힌 계약서에 따르면 자선아파트 매각 총액은 건물 46억 원, 토지 30억 원이다. 토지가격은 평당 약 630만 원이다. 또한 교구 재무평의회는 매각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신자들의 요구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계약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부산교구 교구장 황철수 주교도 지난 11월 20일 해운대성당 신자들과의 면담에서 “원래 이 계약 자체가 주민들이 씨앤티 개발을 선택해 교구의 동의를 요청한 것으로, 교구가 나서서 씨앤티를 선별하고 주민들에게 씨앤티를 보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씨앤티와 교구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신자들 동원해 지은 아파트가 신자와 상관없나”
그러나 해운대성당 평신도협의회와 신자들로 구성된 ‘천주교아파트 부지매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교구가 아파트와 성당이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며, 교구가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씨앤티 개발에 토지를 매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는 교구가 자선아파트를 지을 당시, 돈이 부족하다며 신자들을 동원해 아파트를 지어놓고는, ‘토지 소유권’을 이유로 신자들을 무시하는 교구 행정 절차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자들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교구가 스스로의 소유권을 강조하며 신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상황이 모순이라고 했다.
특히 자선아파트 부지에 초고층 오피스텔 건물 공사가 진행된다면, 바로 옆에 위치한 오래된 성당 건물이 큰 부담을 받기 때문에 이번 교구청의 부지 매각 계약은 신자들의 안전조차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사목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1960년 공소시절부터 해운대성당을 다녔던 허대규 씨는 “교구가 성당과 아파트가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이 없는 것”이라며 “오스트리아 부인회가 부지를 매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구는 부지 매입 후 인부를 고용할 돈은 없다며 신자들을 아파트 공사에 동원했다”고 말했다.
허 씨는 “당시에는 아파트 공사 일을 해야 성사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아이들을 신부님께 맡겨놓고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섞어야 했다”며, “그렇게 고생한 신자들에게 교구가 어떻게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할 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신자들은 수도도 없어서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물을 퍼다 날랐고, 돈이 없어서 굽은 못도 망치로 펴서 다시 썼다. 그렇게 간신히 아파트 한 동을 지으니 또 한 동을 지으라고 해서 또 지었다. 그렇게 고생한 신자들에게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교구가 제대로 된 교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멀리 떨어진 땅이면 모르겠지만, 교구는 성당 바로 옆에 붙은 땅을 한마디 말도 없이 팔아버렸다. 그 곳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성당 마당에서는 이제 하늘을 볼 수 없다”며 “근처에 9층짜리 건물 공사로 성당 곳곳에 금이 갔는데, 바로 옆에 40층짜리 건물이 들어서면 50년이 넘은 낡은 성당이 어떻게 되겠나”라고 우려했다.
허 씨는 해운대 성당이 우동‧좌동‧성가정‧달맞이‧송정 본당을 분당시킨 후, 이제는 노인 신자들만 남아있기 때문에 성당 벽에 금이 가도 제대로 된 수리조차 못해왔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교구가 자선아파트 부지를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한 것이 아니라면 신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독단적인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세 절반도 못 미치는 가격에 매각한 교구”
자선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씨앤티 개발업체와 부동산중개업자가 주민들을 찾아와 아파트 재개발 동의를 받으면서 ‘교구청과 사전에 합의가 됐으니, 주민들은 동의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는 교구장 주교와 교구의 입장문과 배치되는 증언이다.
해운대 성당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은 아파트 부지 매각에 대해 “개발 업자와 R부동산 중개업자가 ‘교구랑 다 이야기가 됐다’며 찾아왔다. 주민들도 ‘땅 주인(교구)이 동의했으니 괜찮겠지’라고 믿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주민의 증언에 따라 씨앤티 개발업체와 아파트 거주자들을 함께 방문했다는 R부동산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물으니, R부동산은 아파트 부지와 관련해 교구청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고 말했다.
R부동산 중개업자는 “400평짜리 조그만 땅을 팔기위해 교구청을 수십 번을 오갔다. 땅이랑 토지랑 주인이 다르니 양쪽으로 분주하게 다녔다”며, 지난 2012년부터 교구청과 부지 매각 내용을 조율해왔다고 밝혔다. 심지어 해운대 성당을 포함한 전체 부지를 매각할 것도 교구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성당 토지 매각 금액이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의혹에 대해 묻자, “아직 해운대에는 땅 값이 싼 숨은 땅이 남아있다”며 작년에도 성당 인근의 땅을 평당 500만원에 매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개업자가 기자에게 보인 토지 등기에는 최종 거래년도가 2015년이 아니라 2012년도였다.
그는 “교구청 신부님이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는 것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하도 당부를 해서 5천만 원으로 예상했던 보상금이 1억까지 됐다”고 말했다. 수 십 번을 왕래하며 만났던 교구청 신부님이 누구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답했다.
보다 정확한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 부동산을 확인한 결과, 부지를 매각했던 R부동산과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성당 인근 H부동산 업자는 자선아파트 부지 매각 금액에 대해 “건축업자나 중개업자가 잘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대 땅값이 2,3년 전부터 폭등했고, 특히 금년에는 그 오름세가 더욱 심했다”라며 “2012년도 가격으로 지금 땅을 매입했다면 엄청 잘 매입한 것이다. 지금은 3,4천만 원은 기본이고, 도로 인근의 땅은 1억에도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운대는 국제도시, 상업지역이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집중된다. 또한 정부 규제가 심하지 않아 건축 사업자에게 이득이 되는 땅이다. 땅만 있으면 높이 올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자선아파트 부지는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당 2,500만 원 정도의 시세가 나갈 것이다. 하지만 자선아파트 땅은 해운대 중앙, 중구에 위치한 땅이라 향후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평당 630만원정도 되는 가격의 땅이 해운대에 남아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 정도 가격이면 2,30년 전 가격이다”라며 “지금은 해운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2종 주거지도 평당 천만 원이다. 상식적으로 주거지가 그 정도인데, 여기는 상업지역이라 훨씬 비싸다. 평당 7,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단독주택 하나를 안 판다”고 말했다.
성당 인근 S부동산에 따르면 자선아파트 부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중동신화하니엘 오피스텔의 경우 평당 870만원에, 완공이 얼마 남지 않은 오피스텔의 경우 평당 9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자선아파트 부지에 들어올 주거형 오피스텔의 예상 수입(194세대,18평 기준)은 약 300억 원 이상이다.
D부동산 중개업자는 교구가 아파트 부지를 서둘러 매각하는 탓에 부지 옆에 위치한 교회가 가장 이득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부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교구청이 업체랑 계약을 맺는 상황을 보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래서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고 말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교구는 473평의 땅을 33억에, 아파트 부지 옆 Y교회는 80평을 32억에 팔았다. 교회의 매각 금액은 평당 4,000만원이다.
해운대성당 강종석 주임신부는 “현지에서 부동산 매매를 하면서 시세를 정확히 아는 신자들이 이번 자선아파트 부지매각은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상가를 운영하는 신자들도 마찬가지”라며 “일부 부동산 업자들이 이야기하는 시세는 그들이 교구청을 대상으로 이야기했던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도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될 만큼 해운대 곳곳이 재개발 중이다. 그래서 땅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상업지구 한 가운데에 있는 자선아파트부지는 그대로 놔두기만 해도 계속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땅이다”라며 “왜 교구가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서둘러 땅을 팔아버리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