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해 위협
1970년대 엘살바도르는 말 그대로 살벌했다. 군사독재정권의 폭정은 갈수록 도가 더해 갔고, 이에 시달리다 못한 민중들은 교회의 ‘소공동체 모임’에 몸을 의탁했다. 이 모임은 복음의 빛으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것으로, 해방신학의 구체적 실천 방안 중의 핵심이었다.
지배층은 이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철저히 탄압했다. 부와 권력을 움켜지고 엘살바도르를 지배하고 있던 ‘14개 귀족 가문’은 그러한 모든 활동을 ‘공산주의’라고 규정하고, 파업 참자가, 노조 지도자, 인권운동가 들은 사살해도 좋다고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특히 교사들과 성직자들에 대해서는 더 했다.
그들은 더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살인과 고문, 강간 등을 마음대로 저지르고, 그들이 처치한 사람 수에 따라 돈을 받는 용병을 고용하기도 했다. 로메로의 오랜 친구이자 예수회 신부인 그란데 신부가 피살된 것도 이들에 의해서다.
1975년 6월 21일 5명의 민간인들이 군인들에 의해 살해됐다. 로메로는 현장에 가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미사를 봉헌한 후, 군사독재정권 우두머리에게 이를 비난하는 편지를 썼다.
당시 그는 교회와 정치는 완전 분리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인간 권리에 대한 흉악한 침해’라며 비난했다. 그러자 우두머리는 손가락으로 로메로를 가리키면서 “성직자 옷은 방탄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것이 그에 대한 최초의 살해 위협이다.
그 후 그에 대한 살해위협은 끝없이 계속됐다. 몇 번인가를 세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반응이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그들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란데 신부의 시신 앞에서, 그들이 그를 죽였다면, 나도 그와 같은 길을 가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부활을 믿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담담히 말하곤 했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민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만약 살해 위협이 현실이 된다면, 그 순간 나는 엘살바도르의 구원과 부활을 위해 내 피를 기꺼이 하느님께 바칠 것입니다. 내 피가 희망이 곧 현실이 되는 표지이자 자유의 씨앗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살인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아무 소용없는 지를 알려줬다. 갈수록 높아져가는 자신의 살해위협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당신은 내가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며 죽었다고 신자들에게 전해도 좋다고 말했다.
저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확신을 갖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단호히 말했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이라고.
정의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살해위협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느냐는 한 브라질 기자 질문에 대답한 유명한 말이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성경 말씀을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피살 직전에 그는 죽음을 의식한 듯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은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처럼 살 것입니다. 밀알이 죽었기 때문에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온 사회가 불의와 죄로 가득 차있을 때 그 사회를 좋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주님이 축복하고, 주님이 바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일입니다.
2010년 3월 24일 사망 30주기를 맞아서야,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비로소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그의 암살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
대통령은 유족과 교회 관계자, 외교사절, 정부 관리 들 앞에서 암살은 불행히도 정부 기관의 보호, 협력 또는 참여에 의해 자행되었다고 밝혔다. 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원의 하느님’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