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이란
로메로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단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지는 않았다. 구분한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것은 하느님이 싫어하신다는 성경 말씀대로다.
그는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지금 우리에게는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깊이 분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허망한 일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는 우매한 군중이 되어서는 안 되고,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에는 “예”, 불의에는 “아니오”라고 확실히 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값진 선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예수께서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말라죽게 했다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게 했다.
* 동료 사제들
그는 교회 내에서 외로웠다. 외톨이 수준이 아니라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료들에게 연대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의 모든 사제들은 그에게 등을 돌려다.
심지어 일부 사제들은 그에 대해 너무 정치적이라거나, 대중적인 인기에 집착한다며 그를 비난하는 비밀 보고서를 교황청에 몰래 보내기도 했다. 그는 홀로 투쟁해야 했다. 그가 라디오 강론을 중요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의 사제들은 그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가 대주교 시절인 1977~80년 살해된 사제는 모두 6명에 이른다.
* 국제적 활동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 로메로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엘살바도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밖에 정확히 알리는 것이 필요했다.
1979년 바티칸을 방문한 로메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엘살바도르에서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살인, 고문, 납치 등에 관한 7개의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1980년 2월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고 돌아오던 중 바티칸에 들려서는 교황에게 엘살바도르 정부는 조직적인 테러와 암살을 일삼고 있어 이를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항의했다.
1980년 2월에는 미국 카터 대통령에게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는 엘살바도르 정부의 민중들에 대한 불의와 억압을 증가시킬 뿐 이라며 즉각 원조 중단을 요구하는 공개편지를 보냈다. 같은 기독교인으로 호소했지만, ‘또 다른 니카라구아’를 우려한 카터 대통령은 거절했다.
미국은 4명의 자국인 가톨릭 여성들이 살해되자 그때서야 원조를 중단했다가,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재개하면서 액수를 대폭 늘렸다. 그는 편지에서 우리는 총과 총알로 사육되고 있다고 썼다.
이 같이 안과 밖은 무관심과 비협조, 방해 등으로 일관했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기 않았다. 그에게 회심을 가져온 그란데 신부의 죽음 앞에서 그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한 맹세를 그는 끝까지 지켰다.
그런 그를 죽인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은 곧바로 대량 학살에 나섰고, 민중들은 그 끔찍한 내전을 12년이나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