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프레스>는 지난 1월 대구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은비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 두 달여 동안 관련 내용을 취재했습니다. 성가정입양원과 원장수녀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 후 성가정입양원을 비롯해 은비사건과 관련된 반론이 제기될 경우 이를 충분히 반영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은비가 좋은 가정에 입양돼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2015년 6월, 생모는 1차 가정위탁 전 은비를 만났다. 아이는 발달지연이나 행동장애는 찾아볼 수 없는 건강한 상태였다. 생모는 마지막으로 은비를 향한 사랑을 전하며 작별을 고했다. 그로부터 1년여 후 생모는 쓰러져 뇌사로 누워있는 은비와 마주해야만 했다.
생모는 은비가 성가정입양원을 통해 1차 가정에 위탁되었다가 다시 돌아와 2차 가정위탁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6월 은비를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해 은비가 입양 돼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성가정입양원에 맡겨진 은비는 2015년 7월 ‘1차 입양 전제 가정위탁’을 가게 된다. 하지만 양모는 은비가 식탐이 많고 씻기를 거부하며, 과도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행동이 부담스러워 여러 차례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1차 가정은 성가정입양원과 논의 끝에 11월 은비를 다시 입양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즈음 성가정입양원은 대구의 한 가정으로부터 입양을 원한다는 상담 전화를 받는다. 이미 성가정입양원에서 아이들을 네 차례 입양한 바 있는 가정이었다. 당시 상담원은 이미 네 명이나 입양한 가정이어서 추가 입양은 어렵다고 답변했다. 원장수녀는 이 같이 답변한 상담원을 나무랐다.
추가 입양이 진행됐다. 남자아이를 원했던 이 가정에 원장수녀는 여자아이 은비를 데려가라고 권했다. 원장수녀의 설득에 양부모는 은비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두 살 남자아이 은호도 은비와 함께 입양했다. 12월 19일, 은비는 이렇게 대구로 ‘2차 입양전제 가정위탁’을 가게 됐다.
주치의도 아니면서 최 교수는 왜 나섰나
대구 가정에 위탁되고 5개월 만에 은비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다. 흔히 물고문의 징후라고 알려진 저나트륨혈증 뿐만 아니라 은비의 몸에서는 아동학대를 의심케 하는 멍과 화상자국들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 앞에 갑자기 최 모 교수가 나타났다. 최 교수는 “양부모는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아이가 이전부터 자해행위를 했다”면서 오히려 신고한 사회복지사를 나무라듯 말했다. 경찰은 은비 주치의도 아닌 최 교수의 말을 믿고 현장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이날, 최 교수가 이렇게 경찰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이후 은비는 어떻게 됐을까.
이후 꾸려진 진상조사위원회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을 현장조사 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는 “대학병원에는 지인이 많습니다. (이곳이) 가톨릭대학(병원)이잖아요. 가톨릭 교인이었고 그 분도 그래서 아마 같은 성당에 다니셨나, 아시는 분이었던 걸로 압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를 방해한 최 교수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려 했지만 고의성 입증이 어려워 처벌을 하지 못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은 경찰을 막아선 최 교수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 같은 조치에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은 지난 20일, 대구가톨릭대학교와 병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최 교수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날 이들은 대구 남부경찰서에 최 교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성가정입양원 원장수녀는 누구를, 무엇을 보았나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의료진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양부모와 친분이 있는 최 모 교수에 의해 오인신고로 무마되고 은비는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을 점차 회복했다.
발달지연으로 평소 자해행위를 한다는 양부모 말과는 달리, 의료진이 4일 동안 지켜본 결과 은비는 의식이 명료하고, 얌전히 누워있었으며 질문에 대답도 잘했다. 의료진은 아이가 발달지연이 있다는 말에 퇴원 후 외래 진료로 뇌 MRI와 발달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지만 양부모는 은비를 데리고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원장수녀는 아이와 양부모의 적응을 돕기 위해 12월 25일, 2016년 1월 15일, 2월 12일, 4월 13일 직접 대구로 가서 가정방문상담을 했다.
성가정입양원은 은비가 1차로 응급실에 갔을 당시 양부모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아동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장수녀는 이후 가정방문에서 은비의 입·퇴원 과정을 설명 듣고 은비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은비 몸에는 아동학대로 의심될만한 외상이 많았지만, 원장수녀는 아이 옷을 들춰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동학대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후 7월 15일, 급기야 은비는 뇌사 상태로 경북대학교병원에 실려 간다. 뇌사에 빠진 은비를 여러 전문가들이 살펴본 바, 생명현상의 중추인 ‘뇌간’이 손상된 상태였다. 중요한 부분인 만큼 튼튼하게 보호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손상될 정도라면 강한 외력이 지속적으로 가해졌음을 보여준다.
대구 양부모는 은비가 이전에 24시간 어린이집에서 방치 되고 1차 위탁가정에서 학대를 받았다고 말한다. 원장수녀도 마찬가지였다. 1차 위탁가정과 24시간 어린이집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대구 가정은 깊은 애정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1차 가정은 일상적인 가정의 훈육행위는 있었으나 학대는 없었으며 오히려, 양육에 어려움이 있어 직접 아동발달센터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1차 가정위탁 종료 후 귀원했을 당시 성가정입양원 기록에도 학대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구가톨릭대병원과 경북대병원 의료진은 은비에게서 아동학대 정황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 했다. 그러나 정작 네 차례나 가정 방문을 하고 은비를 직접 만난 원장수녀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출동한 경찰을 막아섰던 최 모 교수와 원장수녀가 시종일관 하고 있는 말은 한 가지다.
“그 분들은 그럴 분들이 아니다. 이전에도 아이들을 입양해 유학까지 보냈다. 훌륭한 분들이다”
은비가 뇌사 상태로 경북대병원에 실려 가고, 지난 해 10월 29일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자세한 이야기는 3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