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음악 틀어줘. 전등도 켜주고~” 그럼 지니는 알맞은 조도로 전등을 밝히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도 알아서 들려준다. 말 잘 듣는 하인 같기도 하고 뭐든 말만하면 잘 챙겨주는 센스만점 친구처럼도 보인다. TV에서는 이런 지니를 어서 곁에 두라며 한참 광고 중이다. 인간의 능력이 새삼 놀랍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이런 엄청난 재능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처럼 막대한 힘을 갖게 되었는지, 우리 종의 역사를 알아야 한단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결과에 따라, 이 지구상에 있는 온갖 생명체들의 앞날이 걸려있다면서 말이다. 40억 년 전 이 땅에 생명이 출현한 이래, 제비꽃이든 돼지든 모든 생명체는 유기화합물이었고, 모두 자연선택을 법칙으로 천천히 진화해 왔다. 그런데 인간은 과학을 이용해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면서 비유기적 생명을 만들고 있단다.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와 마음까지도 재설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약 25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한 원시인류는 호모사피엔스를 포함해 여러 종들이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약 7만 년 전, 아주 ‘우연히’ 호모사피엔스의 뇌에 유전자돌연변이가 일어나서는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로 의사를 소통하는 ‘인지혁명’이 일어났다는 거다.
언어를 통해 중요한 정보교환뿐만 아니라 뒷담화 같은 소소한 수다를 떨면서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기도 했다면서, 그 옛날 호모사피엔스의 언어가 무엇보다 독특했던 건 ‘허구’였다는 가설을 펼친다. 어떤 식으로 허구를 만들고 나타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직접 체험한 적 없는 신화나 신, 종교를 실재처럼 표현하는 ‘허구’ 덕분에 여럿의 호모사피엔스들이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다는 거다. 예컨대 서로 본 적도 없는 가톨릭 신자들이 십자군전쟁에 함께 참여한다거나, 병원이나 학교를 세울 기금을 기꺼이 낸다. 그건 신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인류의 죄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종교적 신화를 그들이 믿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비교적 몸집도 작고 허약했던 호모사피엔스는 도구와 불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서로 협력해 자신들보다 힘세고 덩치 큰 네안데르탈인 같은 원시인류를 물리치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거다. 여러 명이 힘을 모을 줄 알게 된 호모사피엔스는 호주와 아메리카 등, 가는 곳마다 많은 유대목동물과 대형동물들을 차례로 멸종시키면서 급격히 퍼져나갔단다. 연약했던 인류의 종이 우연히 얻은 돌연변이유전자로 패권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약 1만 년 전 지금까지 야생식물을 채집하고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며 살던 이들에게 ‘농업혁명’이라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새로운 생활방식은 수렵채집에 비해 아주 많은 노동시간이 필요해서 밭 옆에 정착해야 했다. 농부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며 마을을 이뤘고 자연스레 식량생산이 증가했다. 먹거리가 많아지자 인구가 늘었고, 인구가 늘자 다시 경작지를 더 많이 늘려야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수렵과 채집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고 살았던 잡식성 유인원이, 밀이나 감자, 쌀 같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게 되면서 오히려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해져 영양실조에 크게 시달렸다고 한다. 풍요 속의 빈곤인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농업혁명으로 식량생산은 크게 늘었고, 그 덕분에 호모사피엔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단다. 잉여생산물과 많아진 인구를 토대로 지배자와 엘리트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위대한 신, 조상의 땅 등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사회를 결속시켰다는 거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로 하여금,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대로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지키도록 만들었는데, 이런 게 바로 ‘문화’란다. 저자는 역사의 흐름을 보건대, 오랜 시간에 걸쳐 작은 문화들이 한데 합쳐져 몇 개의 큰 문화가 되고, 나중에는 하나의 커다란 문화가 되리라 예견한다.
이런 시각에서 역사는, 통일된 하나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BC1000~1년경,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질서’라는 개념이 나타났는데, 바로 ‘화폐’와 ‘제국’, ‘종교’의 질서란다. 그런데 개념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실재가 아니다. 이런 자본과 제국 그리고 종교라는 ‘상상의 질서’들이 서로 강하게 맞물리면서, 오늘날의 지구촌을 만들어 왔다는 거다. 역사란 참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개별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어느 나라건 독자적으로 경제정책을 펼치거나 독단적으로 전쟁을 벌일 실질적인 능력은 없단다. 국내 문제조차도 글로벌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500여 년 전 일어난 ‘과학혁명’의 여파로 모든 게 기계화되고 있음을 특히 주목하란다. 심지어 동물도 기계화됐다면서 말이다. 닭이나 소, 돼지 같은 생명체들까지 산업 수요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하고, 대규모 시설에서 대량생산한다고 지적한다. 이 세상을 사피엔스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변형하면서 각종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했고, 이미 여러 종을 멸종시켰다는 거다. 녹색과 푸른색이던 지구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된 거대한 쇼핑몰 같단다.
그러면서 전통 농업은 태양의 움직임과 식물의 성장주기에 따랐고, 중세 구두공은 혼자서 신발 한 켤레를 너끈히 만들었음을 상기시킨다. 지금의 노동자는 조립라인에 기계처럼 달라붙어 극히 일부만 담당할 뿐이다. 당연히 전체를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머잖아 이마저 로봇들이 노동자를 대신하게 되겠지. 과연 그러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이제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과학은,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가난과 질병, 노화는 물론이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죽음까지도 해결하려 함에 유의하란다. 생명공학과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 등을 이용해 사피엔스가 가진 유기생명체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초월하는 중이니 말이다.
애초에 길가메시⑴ 프로젝트는, 병을 고치고 목숨을 조금 더 연장시켜 보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죽음 자체를 넘어선 존재, 완전히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려는 프로젝트로 변하고 있단다. 과학은 지금 더 나은 인간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아주 다른 종류의 존재로 사피엔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의식과 인간이라는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날게다. 가령,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메이저는 인간일까 아닐까. 어째 사피엔스의 대단한 능력이 좀 두려워지기도 한다.
신이 되려는 사피엔스. 그는 스스로의 손으로 사피엔스라는 종을 끝장내고, 마침내 자신을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려는가. 그리되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다. (유발 하라리)
⑴ 길가메시 :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초기인 우르 제1왕조의 전설적인 왕.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알기위해 불사의 존재를 찾아 나섰던 영웅으로 수많은 신화와 서사시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