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떠나보낸 인천에서 세월호 3주기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인천은 세월호 마지막 목격자다. 시대의 십자가가 3년 만에 세상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천주교 인천교구는 어떤 의미로 세월호를 추모할지 중요했다.
인천교구는 11일 오전 10시 인천 중구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세월호 3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교구 총대리 정윤화 신부가 주례를 맡았고 22명의 교구 사제단이 공동집전 했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수도자·평신도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미사 시작 30분 전부터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봉헌했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상징하는 14개의 사건은 세월호 관련 사진으로 채워졌다. 기도 중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이 있었다.
성당 입구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편지를 적는 부스가 마련됐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그리고 미수습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겼다. 노랑나비로 수놓아진 노란리본 조형물도 있었다.
성당 안 벽면에는 참사 발생 후 3년간의 사건을 기록한 포스터가 붙었다. 16개의 포스터에는 3년 전 그날의 참담한 상황과 참사 이후 벌어졌던 각종 거짓과 폭압의 지난 일들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었다. 제대 앞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은 현수막이 걸렸다.
빈자리가 말하는 교구의 공감능력 현실
추모를 위한 다양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성당 좌석은 미사가 시작된 후에도 채워지지 않았다.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봉헌하는 세월호 추모미사에 이토록 사람이 적은 것이 이상했다.
최근 발표된 ‘2016년 한국 천주교 통계’에 따르면 인천교구 신자 수는 50만 명이다. 서울과 수원에 이어 세 번째로 신자가 많다. 지역인구 대비 신자비율도 11.7%로 높은 편에 속한다.
인천지역 신자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무심한 것일까? 이날 미사에 참석한 신자 인명희 씨는 “평소 성당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못 듣는다. 지난 해 신부님은 종종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하셨는데, 이번에 오신 신부님은 전혀 말씀이 없으셨다. 이 미사도 수녀님을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부님마다 세월호를 언급하는 차이가 크다”며 “예전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많이 기도했었는데, 신부님이 바뀌면서 점점 기도도 소홀해진 것 같다. 오늘 미사를 드리면서 희생자들에게 죄송했고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인천교구에 보여주는 세월호와 부활의 징표
또한 빈자리 가득한 추모미사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2월 치러진 교구장 착좌식이다. 공석인 인천교구장 자리가 채워지는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그날 착좌식 야외 좌석은 대부분 텅텅 비었다.
인천교구는 국제성모병원 건강보험 부당청구와 인천성모병원 노조탄압, 민들레국수집 비판, 독단적인 답동성당 부지매각, 그리고 관동대 인수와 초호화 요양원 건설 등으로 각종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교회라기보다는 기업처럼 보이는 인천교구의 모습에 많은 신자들이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답동성당 평신도협의회 서윤수 회장은 “추모미사에 자리가 텅텅 비어 나도 많이 안타까웠다. 평일 오전이라는 시간문제도 있겠지만, 답동성당 성역화 사업을 하면서 본당 신자들이 교구와 마음이 멀어진 것도 영향이 없진 않다”라며 “언제부터인지 신자들이 교구가 주관하는 미사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에 대한 무관심과 교구에 대한 불신 등이 섞여 이날 추모미사는 조촐하게 봉헌됐다. 슬픔을 숫자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픔에 공감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세월호 3주기 추모미사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가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교구청 관계자는 “주교님은 중요한 일이 있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교구의 상황이 더 깊이 다가왔다.
세월호는 한국사회의 적폐를 드러냈고, 숨어있던 악인들의 그림자를 보여줬다. 그리고 인천교구 세월호 3주기 추모미사는 오늘날 교구가 신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공개했다. 3년 만에 깊은 물속에서 올라온 찢겨진 세월호와 올 해 부활절이 교구에 전하는 시대의 징표는 무엇일까. 신자가 찾지 않는 교회의 텅 빈 자리를 신중하고 소중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