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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할매‧할배들의 유니크한 미(美)를 허하라
  • 김혜경
  • 등록 2017-05-12 16:44:26
  • 수정 2017-05-12 18: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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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역시 시민들은 위대했다. 지난겨울 어린아이부터 청장년은 물론, 나이 지긋한 노인들까지 광장을 환하게 밝히던 촛불이 다시 생각난다. 언제 떠올려도 뿌듯한 광경이다. 그런데 여기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 대던 노인들이 오버랩 되면 씁쓸해진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맥락 없는 주장을 막무가내로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노인들, 왜들 저럴까 했다. 


▲ ⓒ 곽찬


이번 대선 결과를 봐도 그렇다. 많은 수의 육십대 이상 유권자와 일부지역의 지지도를 보면서 좀 의아했다. 자유한국당 대표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높았던 때문이다. 그네들은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홍준표 후보를 지지할 수 있을까. 저런 이가 대선후보여도 되나 싶을 정도의 행적들과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친 막말은 물론이려니와 무엇보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탄핵정국에서 치러진 대선이었는데도 말이다. 뭐지? 이건? 


그러면서 ‘늙음’이란 걸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구나 이제 백세시대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야 할까. 어떤 노년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어머, 그 나이로 안보여요” “어쩜~ 동안이시네요” 나이 들수록 이런 소리를 들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괜찮게 살고 있나보다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 김영옥은 그런 말들을 좋아라만 하지 말란다. 어쩌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사회가 만든 함정일 수도 있으니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사실 중력의 법칙아래 사는 우리의 살갗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로 쳐지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무슨 수를 써도 결국에는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도 잡힌다. 겉모양뿐 아니라 몸 전체에 기운도 점점 떨어지고 아무래도 움직임이 굼떠진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의 일부니까.


이렇게 늙어가는 사람더러 젊은이 못지않게 빠릿빠릿하게 살란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사는 노년이라는 거다. 외모도 그렇다. 의학의 힘을 빌려서라도 주름을 펴고 주기적으로 주사도 맞으면서 나이먹지 않은 듯 꾸미란다. 그런데 저자의 말마따나 ‘젊고 아름답게 늙자’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다. 이 모순된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쫓으면서 너나없이 자연을 거스르며 살려고 애를 쓴다.


잠깐, 그렇게 되면 ‘젊음=아름다움=좋음’이라는 말인데, 그럼 반대로 ‘늙음=추함=나쁨’이 되는 건가? 글쎄, 어쩐지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선뜻 동의가 되지를 않는다. 노인만이 가진, 노인이라야만 가능한 무엇, 그 나름의 아름다운 뭔가가 있지 않겠나 싶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왜 ‘젊음’이 미의 기준이 되어야 하느냐며 되묻는다. 십대와 이십대는 정도와 차이는 있지만 제 나름대로 ‘모두’ 아름답단다. 그건 눈코입 같은 게 잘생겨서가 아니라 왕성한 세포분열로 빈틈없이, 충만하게, ‘거침없이 성장하며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저 존재자체로 빛이 난다는 것. 따라서 십대와 이십대 이후의 아름다움은 이 빛나는 아름다움의 잔여(p.31)라 단언한다.


그렇다면, 노인의 아름다움은? 노년은 우선, ‘시간-내-존재’임을 염두에 둬야 한단다. 자글자글한 주름, 처진 눈이나 입, 갈색으로 변한 피부, 근육이 빠져 납작해진 엉덩이 등 노년의 몸이 품고 있는 ‘시간’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존엄’과 ‘품위’가 있는데, 오직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라는 거다. 이 아름다움은 외모뿐 아니라 늙은 그/그녀가 겪으며 살아온 시간 전체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오묘한 아우라를 내뿜는단다.


그러고 보니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던 노인들에게서는 그들이 살아왔을 시간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자 노구를 이끌고 나선 노인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들에게서는 노년이 가진 존엄하고 품위 있는 ‘존재감’이나 ‘무게감’ 같은 걸 찾기가 어려웠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갖게 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철학도 읽히지 않았다. 자기대로의 삶, 자기생각대로가 아니라 내내 무언가에 휘둘리며 살아온 듯 가볍고 헐거워 보였다.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태극기집회의 노인들처럼 시간을 보내거나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았다. 어쩐다지?


다행히 책에는 저자가 멋진 노년들을 여러 차례 만나고 인터뷰해서 쓴 글이 실려 있다. 아주 생기발랄하고 개성만점인 노년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각각의 삶은 저마다 개별적이고 독자적이다. 그러면서 다양하고 유니크한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발하고 있다. 


▲ < SBS세상에 이런 일이 > 808회에 출연한 백발의 래퍼 최병주 할머니 (사진출처=SBS)


노인들을 대상으로 생애구술사를 엮으면서, 모든 나이가 살아볼 만 하더라며 두려움 없이 나이 든다는 61세의 최현숙. 모든 인생이 파란만장한 거라며 어쨌거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다며 뽐내는 멋쟁이 할매 78세 최영선.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 졸혼하고는 시골에 살면서 페미니스트 웹진<일다>에 소설을 연재했던 이야기꾼 할배 김담. 그는 한 때 미국에서 잘나가는 건축회사의 CEO였더랜다. 은퇴 후 아내와 졸혼 후 아흔 노모를 모시면서 손수 밥 짓고 빨래하며 살고 있는 78세 이영욱. 시위하는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데 시간 많은 노년들을 모두 광장으로 초대하고 싶단다.


그리고 사십대 초반 늦깎이로 미술계에 나가 스스로 아침9시 출근에 밤9시 퇴근을 정해놓고 꼬박 그림을 그린다는 74세 윤석남. 늘 현역으로 살다가 원로 말고 ‘장이’로 남고 싶단다. 또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그네들 삶의 바탕인 울력공동체를 뒤흔든 자본과 국가 폭력에 대항해 온몸을 던져 싸운 88세 조계순, 86세 김사례 등 밀양의 여러 할매들. 


▲ 2015년 7월, `밀양 송전탑 반대 촛불문화제 200회 및 6·11행정대집행 1주년 기억 문화제`에서 사라 할매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애창곡들을 열창했다. ⓒ 장영식


여기에 자기답게 살기를 강조하며 생활운동을 실천하는 일본의 활동가 67세의 군지 마유미.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로이 하며 살다가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는 75세의 다지마 요코. 샹송을 잘 부르는 유명한 TV강사다.


어떻게 나이 먹으며 늙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에게,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살아도 좋고 저렇게 살아도 좋단다. 여유롭고 당당하게, 마음껏 네 멋대로(!) 살아보라며 환하게 웃어준다. 이 할매와 할배들을 보니 마음이 좀 놓인다.


이래도저래도 좋은 삶이라는 그들에게서 ‘홀가분한 자유로움’과 ‘딴딴한 늙음’이 함께 느껴진다.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자유로움’과 ‘딴딴함’이 자연스레 어울리며 깊은 울림을 준다. 자신의 시간을 충만하게 살아낸 노년에게서나 이런 묘한 에너지가 나올 수 있을 게다. 분명하고 제대로 된 자기철학을 품고 살아온 노년만이 풍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이들 인생선배를 보면서 저렇게 나이 들면 되겠구나 싶다. 이제 자신만만하게 늙어가야지.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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