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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개신교, 서로를 통해 새 종교개혁 이뤄내야”
  • 최진
  • 등록 2017-05-30 12:11:01
  • 수정 2017-05-30 12: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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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종교개혁 500년 세미나를 열고 종교개혁의 의미와 과제를 살폈다. ⓒ 최진


개신교와 천주교가 교회분열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교라는 일치된 심성으로 함께 종교개혁을 성찰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작은형제회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는 2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세미나를 열고, 종교개혁의 의미와 남겨진 과제를 살폈다. 


세미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유해룡 목사가 ‘종교개혁의 동인(動因)과 현대적 의미’를,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이 ‘해방신학이 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작은형제회 고계영 신부가 ‘자유의 관점에서 비추어 본 프란체스코 아씨시와 종교개혁’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한국교회, 종교개혁 때의 전환기 맞고 있다


500주년은 개신교의 시작을 말하기도 한다. 5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그 때를 생각한다면 종교개혁보다는 교회개혁이라는 접근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종교개혁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찾기보다는 무엇을 개혁하려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유해룡 목사는 강연을 시작하며 종교개혁의 대표적인 인물인 마르틴 루터를 재조명했다. 그는 루터의 고뇌가 종교개혁의 동력이라기보다는 여러 도화선에 옮겨 붙은 ‘불씨’ 정도로 해석했다.


유 목사는 실질적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됐던 원인을 살피면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종교 개혁가들이 바라던 교회의 모습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고 했다. 


▲ 유해룡 목사 ⓒ 최진


종교개혁이 시작되자, 인쇄업자들에 의해 루터의 글이 퍼졌다. 인쇄술의 발달은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요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나오면서 1년에 50권 남짓 나오던 책들이 1,000여 권으로 늘었다. 설교가 강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이어 “많은 경우 개혁의 주요 원인을 성직자들의 타락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보다는 평신도들의 각성이 더 맞다.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세계화가 일어났고 평신도들은 새로운 눈을 떴는데, 성직자들은 이전처럼 부패하고 무지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 목사는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평신도들이 신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자 해독율과 교육 기회 확대,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이 평신도들의 지적 능력을 키워, 잘못된 교회 가르침이나 부도덕한 성직자들의 사목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또한, 신자들은 당시 교회의 보살핌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신성함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다. 이 신앙적 목마름은 사도시대 초기교회의 생명력과 소박함에 대한 동경으로 나아가게 됐고,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선택적 독서가 늘어났다. 교회의 가르침보다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해, 삶으로 연결하는 신앙적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유 목사는 “이렇게 르네상스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스콜라적 성경 해석을 거부하고, 교회 가르침에 대해 성경의 근거를 묻기 시작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삶 자체를 본받으려는 영적인 각성이 이루어져, 교회의 공적 제도나 교리보다 내적 생활을 더욱 중요시하는 신자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로마교회도 이러한 시대적 징표를 알고 있었고 스스로도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이 다시 부흥기에 접어드는 것이 바로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회는 스스로 개혁을 주도할 기회를 미뤘고, 결국엔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물살을 맞아야 했다.


유 목사는 “오늘 우리 시대도 르네상스와 같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고, 지식의 복종이 불가능해졌다”라며 “평신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 일각에서는 성직자 계급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신도의 요구가 언제나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없지만, 성직자들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돼있다. 문제는 평신도와 성직자들의 상호작용이다”라고 강조했다. 


새 종교개혁 500년, 교회가 가난한 사람 위해 힘을 모아야


▲ 김근수 소장 ⓒ 최진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해방신학적 입장에서 그리스도교가 힘써야 할 종교개혁의 과제를 살폈다. 그는 종교개혁이 중세 가톨릭의 부패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체가 나가야 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가 개인의 가치와 자신의 역할,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한 사건이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가톨릭은 지금도 민망한 모습을 반복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개신교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사건이며 함께 기뻐해야 하는 사건이다.


김 소장은 종교개혁을 통해 평신도의 중요성이 부각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가톨릭교회는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중심주의를 ‘악’이면서 ‘죄’라고 경고해도, 한국 교회는 이를 못들은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바티칸 제2차 공의회는 자기 시대의 상황을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신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학과 정보를 쥐고 있는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수많은 백성이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는데도 구경했다. 역사의 변혁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종이쪽지 성명서 하나 발표하고 끝이다”라고 일갈했다.


김 소장은 한국 천주교의 불통이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도 발견된다고 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권력 대신 가난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성을 존중하는 제안을 했지만, 교회가 권력을 놓지 못해 개혁을 미루다보니, 스스로가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는 하느님의 영광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집중해야 할 개혁과제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불평등 문제를 강조했다. 


▲ ⓒ 최진


김 소장은 “종교개혁 당시 루터의 고민은 죄 많은 인간에 대한 구원이었지만, 현 시대 한국 교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이라며 “교회들은 하느님을 따른다면서도 정작 사회적 불평등에는 관심이 없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면 가난한 이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인류의 80%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신학을 어디다 써먹나”라며 “그리스도교 신학이 예수의 예루살렘 시절만 기억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며 사회적 불평등과 맞섰던 갈릴래아 시절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세월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돼왔던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실패했다고 꼬집으면서, 이제 그리스도교가 성직자보다는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앞선 것을 겨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서로에게 일치하려고 하는지를 겨뤄야 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종교개혁이 억눌린 약자의 눈으로 성경을 볼 수 있게 한 순기능의 역할을 했다며, “새로운 종교개혁 500년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집중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대가 원하는 자유의 부르심에 귀 기울여야


▲ 고계영 신부 ⓒ 최진


작은형제회 고계영 신부는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교회개혁과 중세 종교개혁의 관계를 살피며 교회가 영적인 자유의 방향으로 새롭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신부는 “철저한 신분 사회였던 중세 시대에 자유는 프란체스코 아씨시가 추구한 사상과 영성의 주추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피어난 프란체스코의 사상적 꽃은 형제적 사랑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프란체스코의 자유·평등사상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겪으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사상적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개는 고통을 참으며 진주를 만들기에 예로부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장식이었다. 하지만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인간 여자가 젖가슴과 아랫배를 노출시키며 조개 위에 있다. 이 전대미문의 화폭을 통해 우리는 자유의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고 신부는 르네상스의 문화적 자유주의 운동이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 개혁가들의 사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만인 사제성을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평등성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자유 ▲직업 소명설과 자유사상 ▲근대 자본주의 태동에 대한 신학적 기여와 경제적 자유주의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프란체스코가 열어놓은 자유의 길은 루터나 칼뱅과 같은 종교 개혁가들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발전됐다.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진 자유 운동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통해 결실을 맺었고, 이후 자유가 제도화 돼서 우리의 품에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와 지금 21세기는 많은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는 시대상황이 변화된 만큼,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신부는 ▲종교 일치를 위한 자유 ▲민주적이면서 인격적인 자유 ▲정의를 통해 실현되는 경제적인 자유 ▲국제적 차원의 정의와 자유 ▲심리적인 치유를 통한 영적인 자유, 핵 위협 및 기후 재앙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현 시대가 요청받는 자유의 부르심으로 제안했다.


한편, 강의 후 질의응답에서 ‘종교개혁의 취지가 잘 반영된 개신교 혹은 천주교 사례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유해룡 목사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가톨릭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며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를 통해 잃어버린 것과 개혁해야 할 것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 종교개혁 후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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