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는 사제들로만 이뤄진 검열위원회를 만들어 언론을 검열한다. 가톨릭언론인협의회 집행부는 그 앞잡이 노릇을 한다. 가장 소통을 잘해야 하는 교구 홍보실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
21일 서울 명동성당 파밀리아채플에서는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가톨릭신자 언론인협의회 시그니스(SIGNIS) 코리아 초대 회장을 지낸 강동순 씨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교회 언론에 대한 검열 중단과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신부 교체 등을 호소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강동순 전 회장은 “한국 천주교를 걱정하며 참다못해 말씀을 올린다”면서 “전화도 받지 않는 홍보국장 신부가 어떻게 15년 동안 보직에 있느냐. 왜 언론인의 원고에 사정없이 칼질하느냐”라고 소리쳤다.
그는 기념미사 후 염수정 추기경이 가톨릭 언론인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현장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직접 추기경에게 호소했다. 행사 관계자는 “홍보국장 신부님께서 해외에 나가신 동안 전화통화가 안 됐는데, 그것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해외에 있을 때도 홍보국장 신부는 나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검열위원회에서 내 원고를 마음대로 칼질해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때부터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가장 소통을 해야 할 홍보국장이라는 사람이 귀를 닫았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15년간 국장 자리에 있게 하는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강 전 회장에 따르면 그는 6개월 전에 가톨릭언론인협의회로부터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50년사’ 출판물에 들어갈 원고를 부탁받았다. 그는 지난 3월 원고를 협회로 넘겼고, 담당 편집위원장으로부터 “읽어보니 내용이 좋았다”라는 답까지 들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함부로 수정하지 말라고 수차례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3일 강 전 회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가톨릭언론인들로부터 원고의 내용 일부를 삭제하고 수정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나는 역사적 사실과 일반적인 상식을 원고에 담았는데, 검열위원회와 가톨릭언론인협의회가 마음대로 칼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십 년간 나를 ‘선배님’이라 부르며 인간관계를 쌓아왔던 후배 언론인들도 교회의 말도 안 되는 검열을 감싸기 위해 나와 인연을 끊었다. 교회가 언론을 칼질하는데, 언론인이란 자들이 현대판 마녀사냥에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회장 껍데기 이용하고, 언론인 자존심은 칼질
서울대교구 검열위원회는 6월 5일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50년사 출판물 판정서’를 통해 강 전 회장의 원고가 “교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자칫 ‘비난’이나 ‘매도’로 해석될 수 있다. 개인적 소회 서술은 교도권 차원에서 신앙에 유익한 것으로 ‘인가’하기에 무리가 있다”라며 가톨릭출판사에 재검열을 통보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강 전 회장은 자신의 원고를 50년사 출판물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내 글을 자기들 마음대로 검열해 어떤 식으로 고쳐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한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내가 어떻게 내 이름으로 올라가는 글을 자존심도 없이 내버려 두느냐”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가톨릭언론인협의회는 강 전 회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원고는 검열위원회의 지적사항을 포함해 10여 곳이 수정됐고, 결국 ‘말씀과 함께’라는 이름의 50년사 기념 출판물에 실렸다. 강 전 회장은 “저들이 시그니스 코리아 초대 회장이라는 내 껍데기를 이용했다. 언론인으로서의 내 자존심은 온통 칼질해 놨다”고 분노했다.
그는 “만약 원고에 불만이 있으면 나와 이 문제를 상의해야 하는데, 검열위원회가 원하지 않는다고 그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칼질했다”라며 “검열위원회 판정서를 보면 내가 교회를 ‘매도’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교회가 종교재판처럼 나를 매도한 것이다. 나는 이 문제로 대화는커녕, 소명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회 친일 역사, ‘증거’는 널렸다.
강 전 회장은 검열위원회가 문제 삼은 원고 내용은 모두 교회가 과거에 잘못했던 사실들을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역사적인 사실과 일반적인 상식에 대한 논의조차 교도권이란 이름으로 막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갈했다.
강 전 회장의 원고에서 문제가 된 내용은 크게 4가지다. 교회의 친일역사 언급과 오늘날 천주교의 문제점, 초기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평가, 그리고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에게 했던 발언 등이다.
먼저, 강 전 회장은 교회의 친일역사에 대해 “박해를 당하던 천주교는 일제가 들어오면서 이에 협력해 교세를 확장했다. 검열위원회가 ‘주관적이고 전문성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친일역사에 대한 증거가 “널렸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가 종부성사를 요청했을 때 교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것,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천주교가 일사불란하게 받아들인 점,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에 천주교 신자가 없는 점 등을 설명했다.
강 전 회장은 “한국 천주교는 친일의 역사가 분명히 남아있다. 반대로 독립운동 역사에서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라며 “교회가 일제에 저항하기 어려웠다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역사적인 서술은 이해가 아니라, 사실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기 정의구현사제단이 임의단체였고 소수였던 것도 사실이다. 정구사가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행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들을 소 닭 보듯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의 ‘아직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발언을 ‘노망이 들었다’라고 말한 것은 신문에서도 찾을 수 있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교도권, 언제부터 상식 판단하는 기준이 됐나
검열로 삭제된 내용 중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있었다. 그는 사제인사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안하면서 “아무리 유능한 분이라도 한 보직에 10년 이상 근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출판물에서는 삭제됐다. 또한 ‘오늘날 교회가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염수정 추기경 시대에도 교회의 내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언급이 모두 삭제됐다.
강 전 회장은 “검열위원회는 교도권을 근거로 이런 내용을 칼질했다. 교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할 때 교도권을 행사하면 모르겠는데,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을 말한 것이 어떻게 교도권 차원에서 칼질당해야 하는가. 교도권이 언제부터 역사적 사실과 상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을 버리고 낮은 곳에서의 포용과 소통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권력의 속성이 더 강해지고 소통을 피하고 있다. 입으로는 ‘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를 외치면서도 뒤에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소통하지 않는다.
공의회가 열린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는 한국 천주교가 그 문턱도 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천주교는 성체조배실에서 조용히 기도나 하는 것이 평신도의 사명인 줄 안다. 사제들로만 이뤄진 검열위원회가 교회를 위해 일했던 한 언론인 평신도에게 하는 짓만 봐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가톨릭언론인은 그 사명에 책임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50년사 출판물 편집을 담당한 최홍운 편찬위원장은 “원고 수정을 내가 했고 강 전 회장과는 8일 날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쇄까지 마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최 편찬위원장은 “교회에 검열제도가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검열이 승인돼야 교회에 배포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요구대로 원고를 뺄 수도 있었는데, 시그니스 초대 회장으로서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편찬위원장의 말에 대해 강 전 회장은 “여러 사람이 똘똘 뭉쳐서 강요한 것이 어떻게 합의인가”라며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원고에 칼질을 하더니 마지막까지 일방적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통보와 강요밖에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 전 회장은 “언론인으로 수십 년간 살아온 내가 오죽하면 미친 사람처럼 성당에서 소리를 질렀겠는가. 지금 가톨릭언론인 중에는 언론에 대한 사명감이나 양심의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이 없다. 교회는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가톨릭언론인들은 그 사명에 누구보다도 책임이 있다. 지금은 기대할 수 없지만, 한국 가톨릭을 걱정하는 제대로 된 언론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는 세상과의 소통을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로 홍보주일이 제정되면서 1967년 첫 발을 내딛었다. 교회가 군사정부에 맞서던 1970년대에는 민주주의 수호에 동참했었고, 최근에는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종교의 역할 등을 성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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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언론 매체인 평화방송이 당사에서 20여년 간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전대식 씨를 상대로 6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당한 사건이 기억납니다.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이었지요.
쟁점이 된 김수환 추기경의 어록들에 대해 전파를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무슨 자격으로 출판금지와 전량폐기를 요구하는지 참 가소롭더군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요구한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당시 그 보도를 보면서 교구 성직자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편협하며 또 강도같은 존재들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1년 전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에서 입장은 다소 바뀐 듯하지만 성직자들이 양아치같이 행동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원고를 작성한 사람이 버젓이 존재하며, 원고에 대해 직접 하소연하는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무시하고 강탈할 수 있는지?
자신들의 허물은 돌아볼 줄 모르는 성직자들의 이런 행태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며, 양심이 실종된 듯한 성직자들의 이런 횡포는 천주교회의 망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