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6일, 무작스러운 국가폭력의 절정을 보여준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약 한 달 후 김수환 추기경께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선종하기 전 그의 생애 중 수년간의 마지막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만 그는 성직자로서 저항과 직언,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정의와 같은 덕목들을 실천했다. 그 측면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한 당대의 사회적, 시대적 표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 대교구의 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교회 내의 평가와 한 사회의 지도자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고, 또 동시대의 다른 개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일리 있는 주장이 있지만, 어쨌거나 그가 천주교라는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시대의 막강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특히 군인들이 동네 깡패들 보다 더 악독하게 독재를 일삼던 시절에 유력한 직업정치인들을 제치면서 정치를 한 손에 쥐고 요리하는 유일한 개인이라는 과장된 부러움과 질시가 회자될 정도였으니, 그가 지녔던 시대적 영향력-그의 개인적 인격과 사회적 열망의 화학적 결합으로 발화된 결과인-의 세기를 짐작케 한다.
그랬던 그의 선종 이후 자연스럽게 빈자리로 남게 된, 그가 누렸던 시대적, 사회적 막강함을 잇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들의 모종의 노력(?)들이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러나, 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고 김수환 추기경만한 영향력(폭력이 아닌)을 행사하는 개인이 우리 교회에는 없다. 포스트 김수환은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
인물이 없다. 난세에 인물 난다 했는데 인물이 없다. 작금의 나라꼴도 교회 안팎의 사정을 보더라도 더 엉망진창일 수 없는 지경의 요즘과 같은 난세엔 인물이 백 명쯤은 나타나야 한다.
난세다. 돈, 언론, 관료, 정치, 군, 법, 교육, 종교까지 조금이라도 ‘힘’이 될 만한 수단을 가진 자들은 동업자 정신으로 똘똘 뭉치거나 각개격파로 눈치도 보지 않고 온갖 독재와 불의와 거짓을 일삼는다. 그 독재와 불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선거를 부정하게 치르고서도 무조건 빼앗고 볼 일이라는 죄의식 없음으로 나타났다.
힘의 유일한 관심과 목표는 진리도 복리도 가치의 추구도 아닌 오직 권력과 재력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끝내 세월호를 비롯하여 밀양과 강정, 용산, 쌍용차 등으로 결과 되었다. 그래서 1 퍼센트의 극소수가 99 퍼센트의 다수를 제물로 삼아 종국엔 전체를 먹어버리는 극단의 약육강식의 구조로 치닫는 작금의 우리사회는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난세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갈 데 없어 어렵게 품을 찾아든 사회적 약자에게 “남의 영업장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교회 문턱에서 야멸차게 쫒아 버린 이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행하도록 뽑힌 사제였다.
모두 일치하여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염려하면서 발표한 사대강 주교회의의 성명서쯤이야 무시하며 개인적인 ‘의견’임을 내세워, 그런 문제는 전문가에나 맡기는 것이 좋다며 소수 의견(?)을 종이 신문지에 냈던 인물은 미사의 영성체 시간에 경찰이라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성체가 땅에 떨어지고 짓밟히는 일에 대해서는 왠지 아무 의견이 없었다. 끌어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사람들과 심지어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저지른 불의한 선거에 교회의 리더십들은 침묵하는 방법으로 기꺼이 가담했다.
세례와 함께 본당에 등록되는 신자의 숫자가 곧 세상의 복음화율로 등치되는 개념상실의 판에서 겨우 몇 백억 원의 교구 숙원사업을 위해 교회의 자존심을 팔았다는 모 교구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면 어떻고 거짓인들 별 수 있으랴. 수십 명의 주교와 두 명의 추기경을 두고서도 고통 앞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위로를 수만리 먼 밖에서 손님으로 오신 교종에게서 듣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어서 자괴감도 들지 않는다.
지금도 세상 곳곳 제주도 강정이나 밀양, 쌍용차, 순화동, 세월호, 제주 4·3, 월성 등지에서 어떻게든 예수님을 증언하겠다며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게 교회는 여전히 명실상부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각 지체들의 친교인지가 의심스럽다.
창세기 18장의 난세도 그런 난세가 또 있을까 싶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에 의하면 세상은 의인의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의인이 있는가와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 구원(유지)된다. 관건은 의인이지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렇다. 사실 포스트 김수환은 꼭 있어야겠지만 딱 하나의 인물일 필요는 없다.
더구나 꼭 추기경일 필요는 더욱 없다. 집어서 거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의인들-소금들과 빛들은 언제고 어디에고 있다. 어쩌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김수환이 있었고 곳곳에 지금도 있지 않은가. 인물이 없다는 말은 그분들께는 불경스럽다.
어차피 복음화는 예수를 증언하려는 이들의 진정성에 의해서 진행된다. 어설프게 민망한 코스프레나 하며 이름을 파는 회칠한 무덤들은 그들만의 유통구조 안에서 소비되어질 수밖에 없다. 은총에 맡기며 그대로 놓아둘 밖에. 대신 모두가 모두에게 포스트 김수환이 아니라 포스트 예수가 되면 된다. 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終
석일웅 : 작은형제회 수사. 생태영성이란 말이 멋있어 보여 아직 산만한 덩치의 철없는 꿈을 꾸는 수도자이다. 작은 것에 삐지고 받는 상처를 맛있는 것 먹는 것으로 푼다. 나이를 핑계 대면서 경당 보다는 휴게실을 더 궁금해 하고 성경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더 잘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