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신명 18,15-20) 해설
<예언자를 일으키고 그 입으로 내 말을 전하게 하리라>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된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지켜야 할 법률을 일러주고 있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 제1독서는 세 부분 중 중간에 속한다. 9-14절은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행습을 금하고, 15-18절에서는 하느님이 백성 가운데 예언자를 일으켜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19-22절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위협하고, 예언자에게는 제멋대로 내세우는 주의주장을 마치 하느님의 목소리인 양 위장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마지막으로 참된 예언자를 가려 낼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위하여 예언자를 일으켜 세워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지닌 의미는,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통할 수 있는 중계자 구실을 떠맡는다는 것을 뜻한다.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행습은 ‘주께서 혐오하시는 짓’이다. 신통력을 인간 마음대로 조절하고 통제하고 부리려는 유혹에 빠지는 짓이다. 그런 미신적 행위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맺어진 확고한 우정의 계약과 양립할 수 없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지닌 능력을 신성화하며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짓이 바로 인간을 자멸하게 하는 미신이다. 인간들은 성실하게 하느님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 한편, 하느님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사람은(부모·친구·선생·지도자·사도로서) 순수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자기의 그릇되고 편파적인 주의주장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시편(94) 해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언제나, 하루하루, 순간순간, 인간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받아들여 실천하라는 촉구를 받고 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엉뚱한 데서 특이한 모양으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살이 갈피갈피와 주름살들에서, 씨름하며 울고 웃는 삶 한가운데서 찌르듯이 도전하여 오는 진한 느낌과 감동으로 문득문득 들려온다.
제2독서(1코린 7,32-35) 해설
<잡념 없이 주님만을 섬기려 하는 사람들>
오늘 제2독서는 지난주일 독서와 연결되어 있고, 같은 문맥에 속한다.
바오로는 계속 동정성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새로운 각도에서 동정성이 지닌 의미를 살리려 한다. 즉 동정생활은 나뉘지 않은 오롯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업에 헌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동정생활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자기 입장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바오로가 동정생활을 결혼생활과 대립시키려 했다고 속단하면 큰 잘못이다. 바오로는 단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동정생활을 권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정생활은 그리스도처럼 온전히(자기 몸과 피와 목숨까지 바쳐)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헌신하려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생활목표를 빛나게 상징해 주는 귀중한 가치로서 구실을 다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가운데서 그들과 더불어 작업복을 입고 그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일하고 있는 어느 독신녀(수녀)의 모습은 슬프도록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모습이었고, 그녀의 독신생활은 응분의 상징성을 모든 인간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비추고 있었다.
복음(마르 1,21-28) 해설
<권위를 가지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마르 1,21-45 부분에는 ‘카파르나움에서 하루 동안 행하신 직분 수행’에 속하는 여러 일화들이 들어 있다. 그 일화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메시아로서 권위가 깃들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신다. 그 집회에서는 성경 중에서 어떤 대목을 낭독한 다음 참석자 가운데 초대받은 사람이나 또는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이 읽은 성경 대목을 해설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집회에서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통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시지 않고, 오로지 당신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권위에 의하여 말씀하신다. 그런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태도에 청중들은 놀라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권위를 입증하시기 위해서 악령 들린 한 사람을 그 악령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이 기적은 마르코 복음서에 처음 소개되는 구마 기적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악마의 세력을 쳐 이기심을 나타낸다.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은 예수님께서 사탄을 굴복하게 하는 메시아로서 권위와 권능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낸다. 사탄(악마)의 세력은 개인이 품고 있는 이기심·자기중심주의·자기 과시욕이요, 사회를 불의하게 이끌어가는 소수 특권지배계층의 야망·재물욕·자유방종이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치심을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사악한 사탄의 세력과 욕망을 벗어날 수가 있고, 인류공동체를 짓누르는 악마의 세력을 쳐부술 수가 있다.
묵상
하느님이 보내신 가장 위대한 예언자 예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이름으로 말을 하신다. 우리는 그분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호소하며 간청하듯이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위를 내세워 당당하게 가르치며, 인간과 인류를 괴롭히고 짓누르는 악마의 세력(나누지 않고 더 차지하고 더 소비하려는 욕심)과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당신이 지니셨음을 똑똑히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사업’(나눔의 사업)에 동참하여 전심전력할 일만 남았다.
하느님은 당신이 애초부터 인류 역사 한가운데 현존하여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입증하신다. 또 그 현존과 활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인류에 대한 당신 구원 계획을 선포하고 생동하게 하기 위하여 흔히 특정한 인물을 일으키고 파견하신다. 그 인물은 자기 이해관계를 변호하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를 섬기거나 우상화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언자 구실을 완벽하게 수행하셨다. 예언자로서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당신 목숨까지 흔연히 내놓으셨다. 생명을 내건 투쟁의 일생을 살고 가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그들은 율법과 경신례를 지키고 행하는 근본정신과 목적을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그 율법과 경신례를 이용하여 백성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이권을 취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르침’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요 가르침이다. 사랑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가르쳐 주신 사랑은 ‘자기 몸과 마음과 피와 살과 생명’을 서로 나누고 바치는 생활이다. 성체성사는 그 사랑의 생활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정점이다. 자기 가진 것과 능력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자기 나라의 자원과 자본과 기술을 다른 나라에 나누어주는 것이 사랑 실천의 첫걸음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 규정이나 인위적인 권위에 의지하여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직접 받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그분은 인간과 인류의 근본 염원을 꿰뚫어보고 계셨다. 당신이 악마의 세력을 철저히 분쇄하실 수 있으심을 입증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반드시 효과를 거둔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 인간과 인류는 분명히 악마의 세력(개인적·집단적 이기심과 우월주의)에서 해방된다. 그분의 말씀은 생동하고 활동하시는 말씀이다. 인류를 위하시는 그분의 노력은 헛되거나 허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악마를 이긴 분이며, 인류를 대적하는 악마의 세력(분열·증오·살의)을 쳐부순 분이시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누구를 대변하는 예언자인가?
그리스도인과 교회, 더 넓게는 인간 모두 서로에게 하느님을 대변하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신명 18,19-20)
지상의 특정 정권이나 체제를 섬기거나 비호하거나 그들의 앞잡이가 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명’, 즉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모든 것을 나누라는 계명’을 가정과 국가와 국제사회 속에 구현하도록 목숨을 내걸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특정한 이념과 체제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와 국제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룩하라고 맡기신 새로운 창조사업이다.
분열·증오·약탈·전쟁은 악마의 파괴사업이다. 독재체제·경제침략·군비경쟁은 악마의 파괴사업이다. 세계 곳곳에서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숱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비정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자멸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더 소비하고 더 누리려는 허망한 망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인류에게 살길이 열린다.
연중 제4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신명 18,15-20)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시편(94)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제2독서(1코린 7,32-35)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마르 1,21-28)
<권위를 가지시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