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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중심에서 ‘사랑’ 중심으로
  • 신성국
  • 등록 2018-03-01 13:36:17
  • 수정 2018-03-01 14: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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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요한3,13)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머문 곳은 사람의 아들 예수이시다. 이 말씀은 예수의 세례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예수가 하느님께로부터 세상에 오실 때는 사명을 갖고 온 것이다. 그분의 사명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간다’의 뜻은 높이 들어올려지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높이 들리셨다. 하느님께로부터 오시는 분이 십자가를 통해 당신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난 사건이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으로 증명하신다. 


율법에서 생명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증거한 십자가에서 생명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대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를 보고 믿음으로 하느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7)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우리는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요한 3장 18절부터는 인간의 응답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다. 하느님이 사랑을 주시는데 받아들일지 아닐지 우리는 어떤 응답을 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자녀관계를 맺게 되며, 사랑과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생명에서 빛이 나온다. 빛은 높은데 있어서 그 빛을 누구나 비추는 것이다. 사실상 예수는 십자가에 높인 들려서 빛이 되셨다. “구리 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요한3,14)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율법대로 사는 사람들은 빛이 될 수 없다. 율법은 복잡한 규정을 많이 만들고, 까다로운 조항을 만들어 사람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종교가 율법이라는 무거운 짐을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살게 하면 그들을 어둠 속에 가두는 일이다. 종교인들의 낯빛이 어둡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산다면 하느님과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이다. 


노예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해방과 자유를 주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우리들은 빛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빛은 사랑이다. 어둠은 율법이고, 죄의식이다. 종교가 죄를 강조하고, 의무적 계율을 강요한다면 빛을 가두는 어둠의 세력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둡다면 종교는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어둠의 편에 섰음을 심판받고 단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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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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