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18절은 벳자타 못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예수는 유대인 축제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 성전 북쪽의 성문에는 벳자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에는 치유의 효능이 있다하여 많은 병자들이 병을 고치러 왔다. 민간신앙에 따르면, 주님의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일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다.
벳자타 연못가에는 38년 동안 앓고 있는 환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물이 출렁일 때 들어가지도 못하고 누워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본다’라는 말씀은 예수의 의도적 행동이다. ‘본다’는 병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적극적 행동이다. 그가 이미 오랫동안 앓고 있음을 아신다. 예수는 그가 치유불가능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아신다.) 그에게 묻는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병자는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고 답했다. 예수는 그에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하였고, 그러자 그는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오늘 이 표징은 예수가 일으킨 7가지 표징 가운데 세 번째 표징이다. 38년 동안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병자는 사실상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수는 이 병자를 치유하셨다. 이 표징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실체를 이르는 표징으로 손색이 없다. 아픈 이가 Logos이신 예수를 믿고 맞아들였을 때,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이 열렸다.
우리는 70년간의 분단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살아가는 벳자타 못가의 병자들이다. 예수는 우리의 처지를 보신다. 예수는 분단에 의해 남과 북이 동족끼리 적대적 상황에서 총을 겨누고 살아가는 두 동강 난 이 땅의 현실을 바라보신다. 미국과 일본에 의해 상처 나고, 전쟁의 공포 속에 몸서리치는 한반도의 정세를 살피신다.
분단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속이고, 반공 이념으로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는 사악한 자들의 악행을 주시하신다. 분단은 죽음이고, 암흑이고, 악마의 손아귀에 넘겨진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살아 갈 수 없는 비극의 땅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 땅의 아파하고 슬퍼하는 울음소리를 모두 들으셨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해 남과 북이 서로 만났고, 남한의 특사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평화를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댔다.
미국에 우리 민족의 운명을 맡기거나 의존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우리 민족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행동들 안에 예수의 사명이 담겨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다. 온 국민들이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종교만이 시대의 표징을 읽지 못하고, 어둠 속에 갇혀 있으니 율법에 갇힌 유대교의 복사판이다.
부활은 예수와 함께 사는 생명의 삶이다. 악의 원형인 분단구조를 쳐부수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부활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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