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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한국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없는가
  • 김유철
  • 등록 2018-03-27 10:50:38
  • 수정 2018-03-28 1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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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色令人目盲 오색영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영인이롱 五味令人口爽 오미영인구상 馳騁田獵 치빙전렵 令人心發狂 영인심발광 難得之貨 난득지화 令人行妨 영인행방 聖人爲腹不爲目 성인위복불위목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온갖 색깔이 사람 눈을 멀게 한다. 온갖 소리가 사람 귀를 멀게 한다. 온갖 맛이 사람 입을 상하게 한다. 사냥하러 뛰어다니는 것이 사람마음을 미치게 한다. 얻기 힘든 보화가 사람으로 하여금 덕행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성인은 배를 위하되 눈을 위하지 않는다. 하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잡는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영국인이 사는 법

아니 죽는 법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성명을 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가오는 추수감사미사 때 그곳에 안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스티븐 호킹이 성공회 신자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히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언론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통상 사원(Abbey)이라고 부르는 그곳의 정식 이름은 웨스트민스터 세인트 피터 성당 참사회(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로서 성공회 성당이다. 


스티븐 호킹의 유해 안치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존 홀 주임사제는 “우리는 과학과 종교가 생명과 우주의 신비에 관한 위대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며 “호킹이 저명한 동료 과학자들 곁에 묻히는 것은 타당하다”고 말했다.(한겨레 3월22일 보도 참조) 


▲ 스티븐 호킹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과학자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옆에 묻히게 된다. (사진출처=Westminster Abbey)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는 영국왕의 즉위식 등 왕실 행사가 열리는 것과 함께 작고한 왕과 여왕, 총리를 비롯해 과학자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소설가 찰스 디킨스,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등 시대를 짊어졌던 이들의 유해를 매장한 장소이기도 하다. 새삼 그 사원이 그렇게 큰 공간인 것도 놀랍고 산 이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그들의 종교, 사회, 장례가 어우러진 문화가 경이롭게 여겨진다. 더욱이 무신론자까지도 포함하여 말이다.


명동성당 재개발은

여전히 아쉽다.


2010년 명동성당 재개발 논란이 되었을 때 한국근대건축보존회(도코모모 코리아)는 ‘명동성당 재개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을 통해 명동성당 재개발을 반대하며 한국의 근대건축물의 역사와 의미, 보존 수리 복원의 연구, 보존운동을 명동성당의 종교적, 근현대사적, 건축도시적 측면에서 재개발 계획에 대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더구나 임대수익 등 경제적인 목적을 위한 ‘재개발’은 종교성에 반하고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거스르며 개발만능의 시대착오적인 행태에 한국 가톨릭의 위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덧붙여 한국근대건축보존회는 문화재청이 명동성당의 구 주교관과 사제회관을 포함, 명동성당 전체영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글1, 관련글2)


2010년 당시 문화재위원회의 명동성당 재개발안 통과에 대하여 천주교회의 4대강에 대한 입장 등과 맞물린 많은 논란을 뒤로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명동성당의 축성연도인 1898을 전면에 내세운 지하공간에는 다양한 매장이 들어가 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곳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먹는 곳, 마시는 곳을 비롯해 책방과 화랑, 기념품매장까지 두루 포진했다. 지하공간 위에는 결혼식과 피로연으로 유명한 파밀리아 채플과 프란치스코홀이 있다. 당연히 유료주차장도 함께. 거기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다시 말하는 것으로 삼는다.


▲ ⓒ 가톨릭프레스 DB


명동성당이 가야 할 길


인간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입 몸 즉 오관은 모두 좋은 것만 원해서 탈이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오온성고(五蘊盛苦)라고 부르며, 노자는 아예 그 번쩍거림이 사람의 눈귀를 멀게 하고 사람마음을 미치게 한다고 말한다. 분명히 예수의 말씀처럼 입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나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이라는 세상의 환락이 사람들의 오관을 휘어잡는 것과 차별화 되는 좋은 공간을 잃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명동 1898 공간의 활용에 대해 ‘사목’적으로 생각해가기 바란다. 평창패럴림픽의 개회식이 화려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니다. 감동은 늘 오색찬란한 눈앞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마음에 있다. 하느님의 일을 대신하는 교회의 사목은 교통순경의 일방적 신호가 아니라 마음의 울림이 있는 쌍방의 일이다.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는 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일마저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이기를 그 분은 늘 기도했다. 


과학자와 탐험가, 시인과 영화배우가 삶의 다른 모습인 죽음을 맡길 수 있는 곳.

명동성당이 한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되기를 바란다.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삶·예술연구소’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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