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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조계사의 신선한 풍경
  • 전순란
  • 등록 2018-04-25 11:08:29
  • 수정 2018-04-25 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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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4일 화요일, 흐림


어떤 때 내가 누구에 대한 불편한 마음과 불만을 갖거나 거기에 대한 얘기를 나답지 않게 막 풀어낼 때가 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풀리는 게 아니고 기분은 더 더러워져 왜 그럴까 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첫째 그 사람에게 나와 비슷한 점이 많고 그 점은 나 스스로 싫어하는 부분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내게 소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싫다면야 말을 않고 안면 바꾸고 소위 ‘개무시’하면 된다. 사실 제3자가 '누가 네 욕을 엄청하더라' 하더라도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욕을 하든 말든 내 생명에 아무 지장 없으니 냅 둬, 멋대로 하게.' 라면 끝이겠지만.... 세 번째,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관계다. 그만큼 내게도 관심이 많다는 말이다.


결론은, 누굴 불평한다고 내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고 상대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맘에 안 드는 건 내 심사니 내게도 그런 점 없나 살펴서 고치면 되고... 하느님이 주신 눈으로 좋은 것만 보고 하느님이 주신 입으로 좋은 말만 하자. 단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수반되는 문제에는 똑바로 듣고 똑바로 보고 용기내어 말하며 온몸으로 함께 하자!



비 온 뒤 만물이 제 빛을 찾고 생기를 회복하니 기분 좋은 아침이다. '띨링!' 비데오폰을 보니 전공 배사장이 왔다. 어제 그 빗속에 전기가 나가자 전화를 하니 고스톱 판 돌아가는 소리에 아마 돈을 잃고 있는지, ‘비 올 때는 못 고쳐요!’라고 짜증을 내더니 아침 일찍 올라왔다. 


다른 전공을 불러 이미 고쳤다는 말은 차마 않고 ‘아저씨 말대로 창고에 달린 콘센트로 물이 흐르고 있어 잘랐더니 전기가 들어 왔어요.’ ‘우리집 전기배선은 아저씨 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아저씨가 최고의 기술자에요.’ ‘요다음엔 그렇게 쌀쌀맞게 마시고 곧장 와 주세요.’라고 달래고 부탁했다. "꽁짜로 해주는 것도 아닌데 부르면 오지 왜 안 오겠소?" 라며 부르릉 오토바이 엔진을 걸고 돌아갔다.


다음엔 그 영감의 고스톱 판세를 살펴서 전화해야겠다. 그런데 ‘돈을 딸 때 불러야 하나? 잃을 때 해야 하나?’ 보스코는 ‘딸 때 전화해야 먹튀를 겸해 자리를 뜰 수 있을 게야.’ 라는데 고스톱에 관한 한 ‘오골계(烏骨鷄)’라고 부리는 보스코의 말이라 신빙성이 없다. 아무래도 이 방면에 권위 있는 이 신부님 가족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다.



11시 30분에 맞추어 공안과에 가서 눈검사를 받고 12시30분, 조계사 건너편 안식교 식당 '만채우'에서 김원장님과 문섐을 만나 점심을 했다. 아주 소박한 음식에도 감사드리며 맛나게 드는 두 분에게 우리 부부는 늘 감복한다. 음식이 정갈하고 정성스럽고 맛이 깊다는 평이다. ‘밖에서 먹고서 기분 좋은’ 몇 안 되는 집이다.


문섐의 책이 나올 때가 가까운가 본데 임신기간이 너무 길어 과다체중의 아이가 나올까 걱정을 하면서도 글 쓰느라 고생도 했고 책에 넣을 사진도 필요한데다 이탈리아도 미치게 보고 싶다니 금명간 이탈리아로 떠날 듯도 하다.




가톨릭 신자가 안식교에서 식사를 하고, 불교(조계사) 나무카페에서 차를 마시니 진정 종교 통합이다. 초파일을 앞두고 조계사 가득 현란한 색깔의 연등을 보면 초등학교 운동회 때 만국기가 떠올라 괜히 신이 난다. 차를 마시고 나오는데 유난히 노지심 같은 거구의 '어깨스님'들이 경내에 우굴거리고 ‘나무아미타불’ 스피커가 천지를 뒤흔들어 살펴보니 조계사 앞에서 ‘불교의 정화’를 위해 애쓰는 시위대가 불교의 권력유착과 총무원장의 사생활을 성토하고 있었다. 조계사의 오늘 이 풍경은 참 신선했다. 


시위대에는 보스코랑 ‘종교정화연대’를 준비하는 불교인들도 보이고, 백운대에서 3년간 1인시위로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를 저지시킨 털보 김병관대장도 오랜만에 보았다. 재가신도들이 저렇게 불교의 개혁을 함께 외치는 걸 보니 이제는 불교도 국민의눈높이에 맞추어가려나 보다. 집에 와서는 내일 모임을 위해 애플파이를 구웠다. 향기로운 저녁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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