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여성 수도자들의 노동인식은 어떠할까.
수도자들의 노동인식을 알아보고 이들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지난 11일,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주최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 마련됐다.
수도자 노동인식 설문조사·연구는 2017년 12월 1일부터 지난 5월 10일까지 이뤄졌으며, 여성 수도자 2인 이상이 일하는 사회복지·병원·교육(유치, 초중등)·교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번 조사결과를 발표한 박문수 박사(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소장)는 과거 교회 스스로 하던 일을, 이제 재정적인 측면에서 사도직들이 정부 재정에 의존하게 되면서 수도자들은 ‘봉사자’에서 ‘관리자’로 역할이 변했다고 짚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 중 50.4%가 책임자였고 27.7%는 중간관리자였다.
또한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면서 근무하는 수도자들 비율이 72%였으며, 초과 근무의 가장 큰 이유는 ‘인력·재정부족’이고 그 중 ‘재정’이 근본 원인이었다. 박문수 박사는 수도자들의 과로 문제를 걱정하면서, 이는 수도자 개인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교회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영역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수도자들이 바라보는 ‘노동’
수도자들이 ‘노동’에서 가장 먼저 연상하는 단어는 ‘힘듦’(27.4%), ‘인간’(23.4%), ‘직업’(19.7%)이었다. 또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 마트계산원, 버스기사, 아파트 경비원 등을 꼽았는데, 이는 육체노동, 위계화 된 노동 질서 안에서 낮은 위계에 속하는 직업군들을 노동자로 인식한 결과였다.
이 결과는 수도자들도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노동’, ‘노동자’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평소 노동문제에 관심 있다고 답한 비율(39.5%)이 무관심(6.6%)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령은 높을수록, 또 책임이 있는 경우일수록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75.2%가 긍정적으로 봤으며, 6.5%는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나쁘다고 평가한 비율은 62.7%, 좋다고 평가한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또한 노사협상이 원만하지 않을 때 일차적인 책임 주체는 ‘노사 모두’에 있다고 답한 경우가 79.4%로 가장 많았다.
박문수 박사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통해 수도자들이 직장에서 직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자들은 대체로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론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여성관, 가정관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를 기반으로 직원들에게 고정된 성역할을 강조할 때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수도자들의 노동 관련 교육 기회는…
수도원이나 교구·교회기관에서 노동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배운 수도자는 각각 46.6%, 34.5%였다. 배운 적이 없거나 혼자서 공부한 경우는 35.4%에 달했다. 또한 노동교리 및 노동관련 교육을 마련할 경우 참석하겠냐는 물음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현한 비율은 61.9%에 달했다.
박문수 박사는 수도자들이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과 더불어 정부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노동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사회교리’가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도자 성소 감소, 고령화, 정년 연령에 이른 수도자 증가는 교회 활력 감소로 이어져, 수도자들이 사도직 현장에서 직면한 현재의 노동 문제를 하루 빨리 인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도자들에게 전문적인 노동교육 시급하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사회교리 이해도가 높고, 책임자 혹은 중간관리자 이상의 소임을 담당하는 수도자들이 노동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개별 사업장 안에서 그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신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수도자들의 노동인식은 교회가 노동 가치를 추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로 보였기에 조사 의미가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신분으로는 수도자이면서 소임을 하는 피고용인이고 사업장을 운영하는 고용주의 입장이 혼재되어 나타나기에 수도자를 어느 한가지로 단순화하기 어렵다면서, “교회의 노동, 수도자의 노동을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정수용 신부는 수도자들이 직원들과 노동문제로 겪는 어려움으로 ‘급여 및 근무조건’이 크게 차지했고 그 두 번째로 ‘노무 관련’이 차지했다면서, “책임자로서 겪는 운영문제에서 오는 어려움의 측면이 크고 이를 위해 기본적인 노동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도자 대상 노동 관련 교육은 ‘교회의 노동에 대한 입장과 원칙적 가르침’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어려움이 인사노무에 대한 주제로 나타난 만큼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한 실정법 위반을 막아야 하고, 노동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정법을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교육은 각 수도원에서 이뤄지는 양성과정에 포함하는 것이 좋으나, 수도 성소 감소로 수도회 간 통합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 신부는 교회의 다양한 사업장 안에서 법과 규정(하느님법과 실정법)이 지켜질 때 수도자들 역시 기쁘게 소임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도 기쁘게 노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범이 사회적으로도 노동 가치를 기억하는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고 인간존엄성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