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화요일,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주목이 쏠리는 세기적인 만남이 될 것이다. 이 회담은 한반도 문제를 넘어서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 체제를 무너뜨리는 세계사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우리 민족은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부끄럽게 살아온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단의 사슬을 끊어내고, 세계 평화의 행렬에 합류하는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변화되는 기로에 서 있다.
나는 캐나다에서 2년 반 동안 살았지만 가장 부러웠던 기억은 캐나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미국 국경을 넘나드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캐나다 여권만 보여주면 미국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여행하고, 쇼핑도 하고 사업도 했다. 그런데 남과 북은 휴전선을 둘러치고, 오도 가도 못한 채, 이산가족들은 혈육도 만나지 못한 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의 공포에 떨면서 살아왔다.
사람 사는 세상은 자유롭게 왕래하고, 소통하고, 함께 공존하고 협력하는데 우리 민족은 일본의 식민지로 점령당해 36년을 핍박 속에 살아왔고, 미군정에 의해 미국의 속국이 되었고,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진 독재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분단 체제가 유지되었다.
2018년 초부터 서서히 진행되는 분단의 붕괴 과정들은 촛불 시민 혁명이 만들어낸 노력과 정성이며, 하늘이 도와준 천운이다. 미국의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핵전쟁을 운운하다가 이제는 북·미간에 대화를 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겠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다.
역사적이고 세기사적인 민족의 대격변기에 한국 가톨릭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비전과 메시지가 나오질 않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지난 2000년, 과거사 반성문에서 “교회가 민족의 분단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소홀히 하였음을 반성한다”고 해놓고, 정작 분단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태도는 시대적인 사명에 부응하지 못하는 교회로써 역사와 민족 앞에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 보다도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적극적인 기도와 행동을 해야 할 시점인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심지어는 교황님까지 나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황청에 남한 태권도단의 시범 행사까지 유치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노력을 경주하는데, 왜 한국 가톨릭은 우리 민족의 사건을 자기 문제로 끌어안지 못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일제 강점기(1910-1945)에 일본이 동아시아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 가톨릭은 한국의 청년들에게 “전쟁을 위해 순교정신으로 목숨을 바치라”고 참전을 호소했다. 순교신앙까지 운운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기도하고 적극적이었다. 미군정이 남한을 점령하니 반공주의 선봉장이 되어 이승만과 친일파들과 손을 잡았던 한국 천주교회였다.
과거에 이렇듯 민족을 배신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선 한국 천주교회가 정작 한반도 평화체제로 변화되는 현재의 민족 역사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시점에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일제 강점기의 민족 배반의 죄를 반복하는 반민족 행위와 무엇이 다를까.
교회가 과거의 죄를 반복하면 퇴행하고 퇴보한다. 그러나 과거의 죄를 끊어내고, 새롭게 쇄신하고 변화한다면 발전하고, 비전을 가질 수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하루빨리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시대의 징표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대격변 시기에 맞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시대의 예언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 젊은이들, 의식 있는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교회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주일 미사 참여율이 1%에 불과한 유럽교회처럼 몰락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졌고, 시대의 변화도 빨라져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교회는 과거의 메커니즘에 안주하고, 안일무사주의로 빠져있다면 아무런 희망을 줄 수 없다. 그것은 교회의 불행이며 또한 사회의 불행이다.
지금부터라도 교회가 진정 이 민족과 역사의 운명 앞에서 어떻게 함께 동참하고,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인가를 모색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시대의 등불로서 다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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