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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지리산 조망(智異山眺望) 3대 명소라는 ‘금대암’에 올라
  • 전순란
  • 등록 2018-10-15 10:42:59
  • 수정 2018-10-15 10: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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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맑디맑은 가을하늘



지난 열흘간 ‘산청약조축제’에서 체질에 맞지도 않는 ‘좌판 장사’를 하느라 고생한 미루와 이사야에게 우리가 주는 상, ‘구절초가 흐드러진 소나무 숲 언덕’으로 가을소풍을 갔다. 힘든 일이 끝난 뒤의 해방감과 풍덩 몸을 던져도 좋을 10월의 파란하늘(이탈리아인들도 이런 가을하늘을 사랑하여 ‘로마의 시월’ Ottobrata Romana이라는 말을 쓴다)에 살랑거리는 바람과 국화와 솔향…. 모든 걸 다 가진듯한 이 풍요로움은 자연 속에 살며 자연과 교감할 때만 느껴 오는 선물이다.


실상사 가까운 산내 산중턱 ‘길섶갤러리’에는 사진작가 강병규썜이 마련한 사진 전시장과 까페, 팬션이 있다. 온 산을 구절초로 꾸며 대자연의 하얀꽃 갤러리로 가꾸었다. 그는 출타 중이었고 젊고 사랑스런 그의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사이에 어린이집 다니는 딸애가 오늘 소풍을 갔다며, 딸에게 마련하던 김밥이랑 고구마 그리고 구절초향 식혜와 포도를 한 쟁반 챙겨다 준다. 아름다운 자연에 안겨 사는 이들은 인심도 좋다, 특히나 이 가을에는…



그집 전망대에 올라 멀리 남쪽으로는 천왕봉과 중봉 하봉, 서쪽으로는 바래봉과 성삼재쪽 골짜기 그리고 반야봉이 무등무등하게 앞서거니뒷서거니 하늘을 내달린다. 집 뒤를 돌아 낮게 핀 구절초의 겸손한 아름다움, 그 겸허함에서 소리없이 꿀과 꽃가루를 따는 꿀벌들, 흰색과 너무도 대담하게 대조되는 용담의 진파랑은 거칠것없이 아름답다. 때로는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 보일듯말듯 그림자 같은 아름다움, 오늘의 구절초가 딱 그렇다. 보고 또 보아도 더 볼 것도 없이 사랑스런 구절초를 실컷 보고 산을 내려왔다.


실상사 정문 앞에 ‘까만집’이란 올갱이 수제비 식당이 있다. 예전엔 마천 가까이 천변에 비닐하우스와 합판으로 된 밥상에 포로수용소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어도 우리는 종일 둘렛길을 걷고 돌아올 때면 그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그때 중딩이었던 소녀가 오늘 보니 애 엄마가 돼 있다. 변함없는 건 주인아줌마의 불친절과 그집 올갱이 수제비의 맛뿐이다. 아줌마 성깔이야 안 고쳐질 테고 ‘내가 다시 오나 봐라’ 맘먹고 나서지만 수제비 맛에 다시 찾게 된다.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이 이왕 지리산 조망(智異山眺望)에 나섰으니 지리산 관망 3대 명소라는 ‘금대암’에 올라갔다. 500년 된 전나무가 제일 큰 자랑일 뿐, 소박한 암자지만 지리산 저 기다란 능선을 밥상으로 받아 안는 이건 또 웬 복이냐! 차고 넘친 절경은 구경꾼에게까지 충분히 나눠 주고도 남는다.




돌아오는 길, 농협마트에서 음료수 두병을 사서 ‘마천석재’의 갈무리공장에 들러 외국인노동자에게 건네주고 석재로 가공하다 깨진 검정돌 3개를 불판으로 얻었다. 우리 것, 미루네것, 봉재 언니네것. 이젠 마당에 장작불을 지피고 지글지글 삼겹살구이와 채소볶음과 김치볶음밥이 집집이 손님을 맞이할 게다. 돌판이 있으니 손님맞이 메뉴는 걱정 끝!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엄살이 제일 심한 포인세티아 네 그루를 집안으로 들이고(10년 넘겨 키운 포인세티아가 올 여름 더위에 둘이나 죽었다), 나머지 화분은 내일 집안에 들이기로 우물가에서 화분을 닦았다. 여름을 보내며 튼튼히 자란 것들도 있지만 눈에 안 띠어 비루먹은 화분도 여러 개다. 


이제는 화분도 하나 둘 줄이라는 보스코의 잔소리 때문만이 아니라도, 주변의 모든 것을 차츰 줄여 이별의 봇짐을 홀가분하게 해갈 나이가 됐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남은 날이 적음을 체감한다. 


남해 형부가 보내준 갈치가 너무 싱싱해서, 보통 저녁에는 밥을 안 하는데 갈치의 유혹에 못 이겨 입안에서 살살 녹는 갈치조림으로 오랜만에 저녁밥을 한 그릇 뚝딱했다. 


내일 승임씨네 ‘13일 기도회’에 들고 갈 케이크를 굽고 나서 자정이 다 되어 올라오니 미루 말마따나 ‘국사(國事)만 아니라 세계사(世界事)로 바쁘신’ 우리집 우국지사는 콧김이 대단한 명마를 타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중이다. 


어디서 전번을 알았는지 오늘도 여러 방송매체에서 방송 인터뷰를 섭외해 왔다. 두 아들은 문대통령 교황청방문으로 언론이 보스코를 찾자 ‘울 아빠 메뚜기 한철’이라고 놀린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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