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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 이기우
  • 등록 2019-04-04 17: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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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목요일 : 탈출 32,7-14; 요한 5,31-47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힘이 권력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치에 입문해서 권력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돈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에 힘을 씁니다. 권력이나 돈이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그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으로서의 권력이나 돈이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그 권력과 돈에 도덕적 권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도덕적 권위가 결여된 권력이나 돈은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죄악의 도구가 되어 사람들을 흩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도덕적 권위의 원천인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권력은 물론이고 돈이나 그밖에 사람들이 인정하는 그 어떠한 힘도 하느님께 근원을 두지 않으면 죄악과 분열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어떠한 권위가 하느님께 근원을 둔다는 것은 사랑과 존엄성을 위한 동기와 목적으로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우상숭배에 빠져 타락한 히브리인들에게 분노하시는 하느님의 타오르는 진노를 풀어드리는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서 이런 중재자로서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느님으로부터는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부르심을 받았고, 백성으로부터는 하느님께 전구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권위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유다인들에게 당신 자신의 권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권위를 입증하기 위하여 사람의 증언을 구태여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셔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 자체가 당신의 권위를 증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당신의 권위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직주의 내지 사제들의 권위주의적 처신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제는 예수님의 일을 하도록 교회의 서품을 받아 신자들과 세상에로 파견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품을 받을 당시에 그 봉사 자격을 갖추는 것일 뿐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일을 함으로써 사제로 완성되어 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사제의 권위도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데에서 나옵니다. 사제라는 신분만으로 권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치는 모든 직업에게서도 일반적으로 적용됩니다. 


그런데도 유독 사제들의 권위주의적 처신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성직주의’라는 부당한 용어를 생겨나게 할 정도로 사제들의 권위 행사가 과도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에 전례와 사목으로 봉사하라고 주어진 권위가 의무로서가 아니라 권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에게 주어진 전례상의 자격, 즉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자격은 신자들에게 봉사하라는 의무의 자격이지 권한의 자격이 아닙니다. 의무로서 전례를 거행하고, 신자 공동체에 봉사할 경우에만 하느님의 일로서 합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 처신을 일삼는 사제들의 성직주의 행태가 논란을 빚어내는 배경에는 평신도들이 하느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세속화 현상이 있습니다. 


사제든 평신도든 수도자든, 교회 내 신분에 상관없이 권위 있게 처신하고자 하면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세속적인 처신을 계속하는 평신도들이 사제들을 권위적으로 처신하게 빌미를 주고, 권위적으로 처신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권위주의로까지 굳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도 더욱 강조해야 할 것은, 사제든 평신도든 수도자든, 교회 내 신분에 상관없이 권위 있게 처신하고자 하면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내 신분은 존재와 관련있 는 것이 아니라 기능과 역할을 구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그가 속한 신분에 상관없이 권위를 상실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려고 백성을 대신하여 기도바치던 모세의 권위를 기억합니다. 아무의 증언도 없이 홀로 하느님의 일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권위를 생각합니다. 사제들의 권위주의에 치이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행하려고 나선 평신도들과 수도자들의 권위를 기대합니다. 권위주의의 굴레를 박차고 나와서 하느님의 일을 행하려는 평신도들과 수도자들과 더불어 공동의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제들의 권위를 기다립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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