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은평성모병원에 기대하는 ‘국민사도직’
  • 전순란
  • 등록 2019-05-17 14:26:01
  • 수정 2019-05-17 14:27:00

기사수정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맑음



보스코가 무호흡증으로 ‘철가면’을 쓴 게 벌써 3개월이 되어간다. 오늘 체크를 하러 병원엘 가는데 얼마 전까지 청량리에 있던 ‘성바오로병원’이 은평구로 커다랗게 집을 짓고 이사를 하며 ‘은평성모병원’으로 개명을 했다.


가는 길은 북악터널을 지나 구기 터널을 통과하였다. 17km의 거리를 가는데 한 시간 반이 걸린다. 구기동길은 내 동생 호천이의 가난한 신혼생활 애환이 골목마다 서리던 곳이라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내 마음도 짠하니 정작 본인들은 그 산비탈과 터널을 지나는 일이 인생의 고달픈 과거가 회상되어 다시는 통과하고 싶지 않으리라.


샤르트르 성바로오 수녀회가 운영해오던 성바오로병원은 지금으로는 비록 자그마하고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수녀님들도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원들도 친절하게 청량리라는 곳에 몰려사는 ‘주변인들’이 마음 편하게 눈치 안 보고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로 운영이 넘어가서 이번에 새로 지은 새 병원, 너무 크고 잘 지어져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칫 눈치를 보거나 주눅들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강남의 서울성모병원을 가보고서 ‘가난하면 아프지 말거나 아프면 죽어라!’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쓰라린 기억 때문에 하는 말이다.


가톨릭교회는 1960년대부터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이라면 일차 진로에 치중하고 가난한 이들이 다가올 만한 문턱의 병의원이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이 접근하기 힘든 으리으리한 병원사업을 접으라고 가르치지만 ‘있는 놈도 좀 살자!’고 아우성치는 자들의 목청이 저런 가르침을 비웃는 듯해서 마음이 씁쓸하다. 종교계까지 삼성병원이나, 아산병원처럼 대기업이 영리를 추구하려고 병원을 운영하는 걸음을 뒤쫓아가면 안 된다.



미아삼거리에 있는 ‘성가병원’이 가난하고 수수한 본래 모습을 유지하여 가난한 이들과 노숙자들의 무료진료소로 계속 운영되어 오고 있듯이 청량리의 성바오로 병원도 그 지역의 가난한 이들이 찾아오는 저가나 무료 병원으로 남았더라면 좋으련만….


자크 필립이 「내면의 자유」에서 말했다. ‘사랑의 속성은 무상성(無償性)이다. 사람이 그가 지닌 유효성 즉 눈에 보이는 유용성에 따라서만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교회의 병원이야말로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금은 의료보험으로 전국민이 치료를 받고 ‘문재인 캐어’로 빈곤하고 무의탁한 계층일수록 적은 돈으로 값비싼 치료와 수술도 보험혜택을 받게 해 놓았으니 다행이라고, 보스코는 강연 가는 곳마다 ‘이것이 바로 국민사도직’이라며 우리 평신도의 책임을 강조한다.


예전에 호흡기크리닉실 앞에, 그리고 담당의 이상학 선생님 앞에 숨 가쁜 호흡으로 줄지어서던 사람들이 반으로 줄어 보였다. 은평성모병원은 그래도 가난한 동네에서 막 이사 온 터라 청량리 물이 덜 빠져선지 모든 환자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여 그런대로 서먹하지는 않았다.



보스코 같은 수면무호흡증 환자들에게 양압기를 대여하여 보험혜택을 받게 하는 양압기 회사의 인과장은 대합실 구석에서 사무를 보는데, 보스코가 며칠 전 입마개를 찢어먹어 그걸 바꿔주며 ‘이제는 익숙해지실 때가 됐는데 (곁에서 채근하시느라) 참 힘드시겠다’고 날 위로해주고, 담당의는 ‘3개월 양압기를 썼는데 언제까지 사용해야 하냐?’는 보스코의 물음에 ‘안경 석 달 쓰셨다고 안경을 벗습니까?’라고 되묻고는 안경처럼 평생을 써야 한다고 타이른다. 3개월마다 찾아와 검진을 받아야 한단다.


돌아오는 길에 정릉 한목사네 들러 최목사님을 보고 커피대접을 받았다. 최목사님은 일이 있어 동대문으로 나가고 우리 부부는 한목사랑 4.19탑 앞에 꽁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먹고는 ‘4.19 민주묘지’를 한 바퀴 돌며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바치고 우리 남북한의 하나됨을 위해 하늘에서 거들어 주십사 부탁드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