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순방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5일, 도쿄 한조몬에 위치한 행사장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만났다. 교황은 원전사고 피해자를 끌어안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위해 모든 방사능 노출 위험을 제거하는데 노력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설에서 가장 먼저 2011년 자연재해와 원전사고로 인해 2만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고, 5만여 명이 이재민이 되어 떠나야 했던 사실을 기억하며 침묵 가운데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교황은 재해 생존자의 말을 빌려 “피해 지역에서 살았던 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이제는 잊혀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오염된 땅과 숲, 방사능의 장기적인 영향력과 같은 지속적인 어려움에 맞서야만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죄악 중 하나가 바로 무관심의 문화”라면서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가족 구성원 하나가 고통 받으면 우리 모두가 그와 함께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주교들과 더불어 일본 시민들이 일부 원전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기술 발전을 우선시 하는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시대에 “멈춰 서서 어쩌면 비판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되고자 하는지를 숙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세상, 어떤 유산을 우리 다음에 올 이들에게 남기고자 하는가?”
교황은 이 같이 질문하며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 이러한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교황은 자리를 옮겨 나루히토 일본 국왕과 만난 뒤에 도쿄 주교좌 성 마리아 대성당에서 900여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교황의 얼굴이 새겨진 기모노를 선물로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는 가톨릭신자, 불교신자, 필리핀 출신의 이민자가 발언에 나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증언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자살이나 왕따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의 증언에 대해 하나하나 세심히 반응을 보이고 특히 필리핀 이민자 출신으로 일본에 정착해 일본인들과의 외향적 차이로 인해 차별을 받은 젊은이에게 조언했다. 교황은 “괴롭히는 이들이야 말로 겁을 먹은 이들이고, 이들은 외적인 힘 뒤에 숨은 겁쟁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함께 이러한 학대의 문화를 퇴치해야 하며, 젊은이 여러분들은 (괴롭히는 이들에게) ‘그만해!’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교황은 이날 오후, 5만여 명이 모인 도쿄돔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이날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 학교와 공동체가 점점 더 이익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과도한 경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사람들에게서 평화와 균형을 앗아가는 과도한 요구와 우려에 짓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세속적 태도와 개인의 행복만을 주장하는 이기주의는 실제로는 우리를 미묘하게 불행하게 만들고 노예로 만들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상 설교에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는 가르침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끄라거나 우리의 일과와 일상적 책임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우선시해야 할 것들을 바라보라는 격려”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남들이 하는 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쫓는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우리 목숨까지 걸어가며 성공을 추구하는데 매몰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일상의 선택을 다시 한 번 고려해보라고 격려하고 계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저녁 마지막 일정으로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역사는, 민족 간 갈등과 국가 간 갈등은 대화를 통해서만 유효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며 “핵 문제를 다자간 측면에서 접근하여 더 큰 규모의 국제적 합의와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 과정과 절차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이러한 발언은 핵무기 금지 조약(TPNW)에 가입하지 않은 일본에게 국제적인 비핵화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권유로 해석될 수 있다.
교황은 이외에도 지난 2월 이슬람교와 가톨릭교회가 체결한 종교간 평화를 위한 「세계 평화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인간의 형제애」를 언급하며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건전한 관계는 평화의 미래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진정 정의롭게 인간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되는 윤리적 원칙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오전, 1913년 예수회 신부들이 설립한 소피아대학(조치대학) 방문을 마지막으로 일본 순방 공식 일정을 마치고 11시 35분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