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금요일 : 다니 7,2ㄴ-14; 루카 21,29-33
성서 주간의 다섯째 날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정치현상 속에 드러나는 징표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식별하는 지혜에 대해서 말합니다.
동트기 전의 하늘이 가장 어둡듯이 하느님의 선을 가리는 세상의 악이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그런 시대의 어둠이야말로 새벽을 재촉하는 시대의 징표라는 것입니다.
독서에서 다니엘이 본 환시는 기원 전 6세기경 바빌론 유배 시절부터 기원 전 3세기경까지 근 3백 년간 이스라엘을 지배한 세력들의 흥망성쇠 역사를 한 눈에 본 것입니다. 이 역사는 지중해를 가리키는듯한 ‘큰 바다’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혼돈의 역사입니다. 이 나라들이 네 마리 짐승으로 묘사되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악한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의 날개를 갖춘 사자로 묘사된 첫 번째 짐승은 바빌론 제국의 위세를 상징합니다. 난폭하여 주변 약소국들을 차례로 정복한 바빌론은 7년 동안 하느님의 벌을 받고나서는 겸손해져서, 독수리의 날개가 뽑히고 사람처럼 걸어다니며 지성과 의지를 나타내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이 시기를 경험한 유다인들이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던 전승을 기록할 때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탑의 이름을 바벨탑이라고 지었던 사연이나 종내는 그 탑을 짓는 데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각지로 흩어졌다는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곰으로 묘사된 두 번째 짐승은 바빌론을 누르고 일어선 메디아 제국을 나타냅니다. 이 곰이 입 속에 갈비 3개를 물고 있었다는 표현은 메디아가 세 나라를 정복했음을 시사합니다.
머리도 날개도 네 개씩 달린데다가 날쌘 표범처럼 생긴 세 번째 짐승은 페르시아를 빗댄 것입니다. 과연 페르시아는 사방으로 거침없이 진격하여 동방을 정복하였고, 키루스, 다리우스 1세, 아하스에로스, 아르닥싸사의 네 임금이 다스렸습니다. 키루스 치세에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앞선 세 짐승보다 더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며 쇠 이빨과 열 개의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네 번째 짐승은 그리스를 상징합니다. 쇠 이빨로 물어뜯듯이 사방 천지를 정복해가던 그리스는 알렉산더가 죽은 후 눈과 입을 가진 뿔이 상징하는 후계자들은 열 명이 출현하였고 그 열 개의 뿔들 사이에 나오는 또 다른 뿔은 안티오쿠스 4세를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을 신이라 자처하면서 그 뜻으로 ‘에피파네스’라 칭하였고 피정복민들을 그리스 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해 유난히 잔학하게 유다인들을 박해한 악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마카베오 항쟁도 일어나서 무수한 유다인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러한 지상의 환시에 나오는 짐승들은 천상의 환시에 나오는 심판주 하느님에 의해 통치권을 빼앗기고 심판대에 오릅니다. 흰 옷과 깨끗한 양털 같은 머리카락을 지니신 그분은 불 같이 타오로는 심판의 옥좌에 앉아 세상의 역사를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네 마리 짐승에 대한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혼돈과 짐승의 포악함이 계속되는 한 역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위협적인 세상의 악 속에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그 나라에서 하느님께 시중을 들며 그분의 뜻을 떠받드는 이들의 삶 자체가 악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 심판에 대한 환시로써 다니엘은 유다인들의 희망이던 메시아 도래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이 환시 예언을 익히 알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무화과나무의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듯이, 당신이 선포하고 계신 복음을 보면 하느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고, 그 나라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 나라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하느님 나라가 누룩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으며 겨자씨처럼 자라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열매이며 미래의 씨앗입니다. 현재 우리가 평온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적인 신앙생활은 다니엘이 전해준 바와 같이 간단치 않는 역사가 숨어있으며, 예수님께서 일깨워주신 바와 같이 고귀한 의미와 가치가 들어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독재시기를 합하여 백 년 동안 우리 겨레도 엄청난 혼돈과 무지막지한 탄압을 겪었습니다. 억압과 분단, 전쟁과 독재를 경험했습니다.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금도 자유와 평등, 연대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친일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하고 남아있고,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적으로 보는 친일파의 후손과 독재의 부역세력들이 반공을 방패로 삼아 여전히 기득권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움켜쥐고 있는 불의한 기득권 때문에 정의가 온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고, 이들이 조장하는 양극화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맞서는 연대의 손길이 아직도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의식이 깨어나게 된 시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희망의 징표입니다. 바야흐로 깨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이 시대의 징표로 주목하면서 신앙이 열어갈 새벽을 기다립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