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목요일 (2020.1.23.) : 1사무 18,6-9;19,1-7; 마르 3,7-12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일치하려는 쇄신의 여정에 있어서 가톨릭교회와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갑(甲)이 아니라 을(乙)의 지위에 처해 있습니다. 분열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자면 분열한 당사자 모두의 책임으로 귀결되겠으나 분열 당시의 가톨릭교회 당국자들이 복음적으로 처신했더라면 아예 분열이라는 사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서방 교회의 분열도 그렇지만 서방 교회 안에서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이 갈라져 나가게 된 분열 사태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성사를 내팽개치고 나간 후 성서에 몰두하면서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커다란 자극이 될 만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지만 성사 포기를 합리화시키는 비성서적 논리도 스스럼없이 전개하는 모습이라든지 -특히 성체성사의 근거가 되는 요한복음 6장의 경우- 스스로도 끊임없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인 루터, 칼빈, 쯔빙글리 등도 간직하고 있었던 성모신심조차 내팽개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을 포용하지 못했던 당시 가톨릭교회 당국자들의 옹졸한 태도를 더 원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집 나간 자식보다 나가게 만든 부모가 더 책임이 있는 법이니까요. 특히 한국 개신교파들의 경우, 갈수록 돈의 문제가 심각해져서 맘몬숭배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사실은 너무나 엄중해서 이 강론에서 논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일치 운동을 위해 천명한 실천 조건과 지도 원칙은 먼저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으로 회심하고 화해를 청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본자세 위에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쇄신되어야 할 목표도 천명한 바 있는데, 그것은 지금의 ‘가톨릭 그리스도인들’도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도 ‘가톨릭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일치교령, 24항).
‘가톨릭적’인 기준은 분열 당시는 물론 지금의 양 당사자 현실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인 교부들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이 용어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사도들의 제자들이었던 교부들이며, 이는 당연히 현재의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합리화시키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사신부이자 비텐부르크 대학 신학교수로서 비텐부르크 성당 문에 내걸었던 95개조의 질문은 정당한 항의였습니다. 루터 역시 가톨릭교회가 성전에만 의존하지 말고 성서를 존중해야 하며 사도들과 교부들의 전통이 살아있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따라서 이를 관용하지 못하고 그를 파문한 당시 교황과 교황청 당국자들의 처사는 매우 옹졸한 것이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루터로 인한 파문을 수습하고자 더욱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사태는 개선되지 못했고 훨씬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애초 루터가 항의했던 정당한 취지를 대폭 수용한 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계시의 원천으로서 성서와 성전을 천명한 것, 말씀 전례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 초대 교회의 모습, 특히 교부들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권고, 평신도들의 교회 내 지위 향상, 교황의 전제적 지위가 아니라 교황을 포함한 주교단의 공동사도성을 확인한 것 등이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루터의 공(功)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過)도 있습니다. 파문을 당한 후에 내세운 구원의 원칙, ‘오직 성서만으로,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명제는 당시 부패한 중세 가톨릭교회의 리더십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루터의 선택을 따른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비판하며 루터를 흉내 내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자본주의에 물들어 심각할 정도로 맘몬 숭배에 빠진 사태가 그 증거입니다. 루터가 옳았다면 생겨나서는 안 될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갈수록 그 후폭풍은 거세어지고 있어서 지금에 와서는 그 어느 누구도 브레이클 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분열하고 있던 19세기 미국에서 북캐롤라이나 교구장이었던 제임스 기본스(James Gibbons. 1834~1921) 추기경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도 다 함께 복음적으로 쇄신하자는 취지에서 『교부들의 신앙』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그 당시에 이미 200여 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지금도 여전히 스테디 셀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후 펴낸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 대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이 보인 호응과도 비슷합니다.
서로가 복음의 기쁨에로 회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치의 정도(正道)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박해할 때 극력 보호해 주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 다윗에 대해 보여준 아름다운 우정이, 교부들의 신앙을 기준으로 한 복음적 쇄신에 있어서 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요청됩니다. 그래야 가톨릭이건 프로테스탄트건 교회가 복음적이지 못하도록 열일을 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을 쫓아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