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프레스 [기고]에는 독자로부터 기고된 글을 게시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반론 등을 제기할 경우 언제든 게재할 방침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정신적인 지주는 사제라고 착각하는 사목자도 있지만, 신앙의 주춧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주님을 향한 믿음이 굳건한 평신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망을 안고 본당을 떠나는 신자들이 비일비재한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사제일수록 공동체가 제 것인 양 횡포를 부리고 그래도 안 되면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사제로서의 존경과 신용을 잃고 교우들이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위선의 맛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언행일치하지 않는 위선의 쓴맛을 몰랐던 신자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세상을 옳게 다스린다고 호언하는 사목자들이 그렇지 않은 횡포를 부릴 때 신자들은 하늘을 보고 울어야 한다.
성서교육이나 평신도 교육은 뒷전이고, 소통의 부재와 책임 회피, 내 탓이 아니라 네 탓만이 존재할 뿐인 한국 정치판을 그대로 닮은 교회 지도자는 마음을 닦는 지도자가 되어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마음을 닦는 교회의 지도자는 고개를 숙일 줄 안다.
비굴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맑은 허공처럼 마음이 맑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늘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지도자가 그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교회에서 고해는 "내 탓이로소이다"로 시작된다. 이것은 시비를 떠나서 속을 털어 놓으라 함일 것이다. 시비를 떠나 말을 하면 참말일 수 있지만 시비를 걸고 말을 하면 말꼬리가 길고, 서로 그 꼬리를 물고 늘어져 밀고 당기다 안 되면 송사를 벌인다.
판관이 시비를 가려주면 판관의 말을 믿는 다기보다 법이 무서워 판관의 말을 마지못해 따르게 된다. 송사가 걸린 시비는 항상 원수를 짓지 벗을 만들어 주진 못한다.
마음으로 이루기보다 권력과 재화와 명성으로 형성된 절대적인 돈이라는 힘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시비의 자리를 마음대로 바꾸어 주물러 댈 수 있는 속셈이 개입되기 때문에 시비의 상처는 골을 더욱 깊이 팔 뿐이다.
돈이 우상으로 존재하는 곳에는 대립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무서움이 없는 대립은 대결을 이루고 대결은 생사결단으로 이어져 사람과 사람을 이념의 원수로 만든다. 이러한 시비로 하느님의 한 자녀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쑥대밭이 되며 서로가 적이 되어 남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하여 뿔뿔이 흩어진다.
하늘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교회지도자가 중심에 서서 신자들 사이에 이념의 원수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발을 밟았을 때는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멱살을 잡히기가 쉽다. 동생이 형의 발을 밟았을 때는 실수라는 시늉을 하면 된다. 아들이 어머니의 발을 밟았을 때는 서로 웃어도 된다.
첫 번째 경우는 체면의 예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경우는 숨기고 감출 것이 없는 한 형제와 모자 사이에 믿음이 있기에 잘못이 있다하여도 대수롭지 않고 편안하게 서로를 대할 수가 있다. 하느님의 한 자녀라고 불리는 형제, 자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라면 진실을 감추고 숨길 것은 아무 것도 없어야 되지만 무늬만 하느님의 자녀인 곳도 있다.
자선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곳에 기부하는 돈이다. 자선이라는 타이틀로 개최되는 바자회 기금은 오로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일 때 신자들이 땀 흘린 대가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참으로 필요한 곳에 쓰여 져야 할 자선금의 용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또 다시 자선바자회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자선금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며, 바자회 개최 시 임기기간이 아니어서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공허한 발언만 존재할 때 이 곳이 과연 신앙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맞는지 참으로 통탄스럽다. 지나간 자선금의 출처를 투명하게 반드시 밝혀낸 후 자선에 걸맞는 바자회를 열어야 할 것이다.
주보에 공지되는 봉헌금과 실제로 거치는 봉헌금의 불일치, 개인 비밀 유지라는 미명 아래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는 교무금 현황과 사제관 공사비용의 이중 회계 장부 처리 등 신뢰할 수 없는 재정의 허점이 모여 신자들의 알 권리는 박탈당한 채, 의무적인 납부만을 강요하는 공동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반론을 제기하는 신자는 바로 적으로 몰아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내쫓김을 당한다.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후리는 것은 경계를 일삼는 자들의 수법이며, 가난해야 할 공동체가 점점 부유해지는 것은 산으로 올라가든지 바다로 가든지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용심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진실된 사랑의 신앙공동체는 서로 안아들이면 낯설고 낯익고가 없다. 서로 통하는 믿음이 있고 서로 돕는다는 아량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교회 지도자에게 굽실거리고 무조건 덮고 침묵만이 공동체에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썩어빠진 안일한 자기 합리화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해외교포사목의 운영은 참으로 오묘한 면이 많다. 잠시 공부하고 떠나는 유학생과 주재원이 본당에 머물다 귀국하는 기간은 대략 3년 정도다. 사제와 수도자 역시 비슷한 기간에 파견된다. 만일 잘못된 사목의 재정난이나 불의가 판 친다 해도 3년이 지나면 부메랑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묻혀 진다.
새로운 사제와 사목회가 구성되어 늘 탈바꿈할 수 있으며 책임을 통감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체제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깨끗한 신앙공동체를 위하여 정의롭게 일할 수 있는 일꾼들은 보수적인 교민들의 입김 작용으로 사목일에 관여할 수 없도록 사전에 왕따 시킨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목자의 심복이 되는 신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고여 있는 썩은 물은 그대로 방치되어 덮어진 상태로 새로 부임한 교회 지도자는 또다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며 축배를 들자며 건배를 외친다.>
김혜선 : 안동교구 소속 런던 해외교포 사목 평신도이다. 런던한인성당 신앙의 길잡이 계간지 하상(구)편집인, 런던 특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