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을 맞는 5일, 참사 희생자들과 생존자, 유가족들을 기억하는 천주교인들이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 모여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에는 유가족들과 천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 200여 명이 함께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이 우리 시대 새로운 예수님”
이날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는 “예수님은 미소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셨다. 고통 받는 사람들, 유족들, 희생자들에게 해준 것이 예수님, 하느님께 해드리는 선업임을 우리는 확신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한다”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과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동일체 의식이고, 바로 그 분들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예수님이자 성모님, 성인이라는 공감 의식을 갖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때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도도 연일 됐지만, 이태원 참사에는 다소 냉소적이고 무관심, 외면이 있다면서 “이것을 우리가 넘어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함 신부는 “우리는 검찰을 중심으로 한 악의 세력의 고리, 이른바 카르텔을 경계하고 부숴야 한다”며 “지난해 10월 29일 그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나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정부가 무능력, 무책임하고 시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임을 확인했다면서, 그 시간에 그들이 한 일은 음모를 꾸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음모를 꾸민 자를 밝혀내야 한다”며 “음모를 꾸몄을 뿐만 아니라 행안부 장관을 비롯한 당사자들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함 신부는 “가족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공무원, 형사, 경찰 등이 동행하면서 완전히 차단시켰다. 이것은 공직자가 아니라 악의 무리다. 사제로서 이를 질타하고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을 만나게 하지 못하게 하고 각 병원으로 흩어지게 명령한 자를 찾아내야 한다. 그 자가 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그 뿌리에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근원적으로 청산하지 못한 것에 뿌리가 있다”며 “오늘 이 검찰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그 졸개들”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서장, 구청장 등 몇 사람이 구속됐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잘못한 것이 있지만 그 사람들을 구속할 것이 아니라 경찰청장, 행안부 장관 이런 사람들을 구속해야 한다”면서 “서울시장도 구속해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 져야 할 사람이 외국에 나가 있었고, 돌아와서도 하는 것이 없었다. 어제 유가족들의 광화문 추모행사도 막은 사람이 시대의 죄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더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런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더 큰 죄악이며, 진실을 은폐하는 죄는 더 큰 죄”라고 강하게 말했다. 또한 진상을 밝히고 지적해야 할 언론이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언론도 공범이다. 언론을 맑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시대적 의무”라고 덧붙였다.
함 신부는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고 함께 하는 연대가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 선조들이 가르쳐주신 교훈”이라며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의 회개를 요구하는 하늘의 외침이자 시대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미사 말미에, 유가족들은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 유연주(카타리나) 씨의 언니 유정씨는 “저희가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시 쉬고 싶을 때, 삶의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언제나 저희 유가족의 곁에 계셔주셔서 100일이라는 시간을 힘겹지만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시청 광장 앞에 설치했던 분향소 역시 연대해주시는 모든 분들 덕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0일이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지혜롭게 버텨주신 모든 유가족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지만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듯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 또한 주님의 뜻 안에서 결국 올바른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6일 오후 1시 서울광장 앞 분향소를 서울시에서 행정대집행으로 철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유가족들에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호소했다.
고 신애진(가브리엘라) 씨의 아버지 신정섭 씨는 “이태원 골목에서 저희 딸을 잃고 아내와 전국 성당과 성지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기도했다”며 “성당에 다니면서 저희 딸아이를 찾기 위해서, 우리 딸아이가 어디 있을까 보기 위해서 신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천국이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성모 마리아님께 빌었다”고 말했다.
신 씨는 “저희는 사실 많이 숨어 있었다. 어느날 유가족협의회를 알게 되고 아픔을 공감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연대’라는 낱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또한 “분향소에 분향을 하러 오시는 시민들, 울어주시는 시민들, 또 기도해주시는 여러 성직자들을 보면서 공감의 마음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딸아이의 몫까지 함께 사는 인생을, 어떻게 하면 삶이 의미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우리가 아이가 떠나간 지 100일이 됐지만 저희 아이와 함께 사는 탄생의 100일이라고 마음 먹고자 한다”고 전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썼던 일기를 찾아봤어요. 굉장히 마음 아파서, 우리 딸아이보다 한 살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울고 세월호 집회마다 찾아다니면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울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저는 행복한 삶을 살았구요. 그때는 이러한 고통의 삶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저는 제 고통의 차례를 받아서 고통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 다음번에 고통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생각하는 공감의 마음이고 함께 나누는 연대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미사 후, 분향소가 있는 서울광장까지 행진
“햇빛도 잘 들고 바람도 막아주는 이 분향소가 철거되지 않도록 도와달라”
미사를 모두 마친 후, 참석자들은 침묵 가운데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까지 기도를 바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분향소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희생자 159명의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기도하고 추모했다.
분향소에 있던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찾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끝까지 저희에게 힘이 되어주시고 함께 해주신다면, 저희 아이들의 억울함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고 최민석(라파엘) 씨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 차가운 녹사평 분향소에서 많은 분들 모시고 시청 앞에 분향소를 마련하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오늘 미사를 통해서 저희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강론 말씀이 또한 한 번 힘이 됐다. 유가족 모두 위로해주시는 그 마음과 기도를 다 느끼고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 천국에 있는 거 맞는데 너무 그립고 너무 억울하고 너무 보고 싶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 분향소를 철거한다고 공문이 왔는데 우리 유가족이 믿을 사람들은 우리 시민들, 그 응원만 믿고 있다. 햇빛도 잘 들고 바람도 막아주는 이곳에 새로 마련한 이 분향소가 철거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날이 갈수록 우리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날이 갈수록 고통이고 힘이 드는데 신앙의 힘으로 이겨보자고 다짐하고 미사도 보고 기도도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가서 힘내야 되는 시간들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자신이 없지만 어제 다시 또 한 번 힘을 내려고 용기를 냈습니다. 분향소 찾아주신 시민들 보고 다시 용기를 낼 거구요. 저희가 또 주저앉고 힘에 부칠 때 여기 와주신 모든 시민들과 성직자분들과 또 한 번 힘을 합쳐서 그때마다 또 힘내겠습니다.
참석자들은 유가족들 곁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는 기도와 다짐을 마지막으로 참사 100일 추모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서울시는 4일 서울광장 앞에 설치한 분향소를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6일 오후 1시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