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토요일(2023.5.20.) : 사도 18,23-28; 요한 16,23ㄴ-2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속 강조하시던 부활의 기쁨에 대한 고별사 말씀을 마무리하시면서 당신의 신원과 사명에 대해 결정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요한 16,28). 이 말씀이 그분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사의 결론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저 세상에 느닷없이 내동이쳐진 우리네 존재가 고통의 바다인 인생에서 고생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무덤만 남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만, 믿음이 있으면 우리네 존재가 하느님께 근원을 둔 신적 존재로, 다시 말하면 그분의 자녀로 격상될 뿐만 아니라 세례 때에 그분이 주신 영적인 몸으로 생기를 얻은 영혼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세상에 왔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놓고 우리 다음 세대가 또 그 사명을 이어받아서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만들어 나가게 되면,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가득히 채워질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현세에서의 삶이 부유하거나 화려했다 하더라도 육신의 죽음으로 그 삶도 무덤 속에 묻히고 말 것이지만,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생을 마친 후에는 살아있는 동안 행한 업적대로 심판을 받고 나서는, 그 상급의 여하와 정도에 따라서 천국에 올라가 현세에 남아있는 이들을 돕는 천사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품위 있고 고귀한 삶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고별사의 결론은 우리의 목표가 되어 줍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하느님께로 가는 것.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선교여행을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단 제1,2차 선교여행에서 건설해 놓은 공동체들을 순서대로 둘러보면서 점검도 하고 격려도 하는 일정을 거친 후에 에페소에서 삼년을 보내면서 중점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당시 에페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페소는 ‘동방의 로마’로 불리며 번성하고 있었지만 그만치 우상숭배도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로서는 이 에페소를 복음화시키는 일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전체와 나아가서는 로마제국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여길 만 했습니다. 나중에 바오로와 그 제자인 디모테오의 뒤를 이어 사도 요한이 에페소 선교를 물려받아 주변 여섯 도시에 있던 교회를 돌보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에서보다도 더 큰 규모로 그리스도 신앙의 세상을 늘려가다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지도자들이 모조리 로마에서 치명하게 된 덕분에 신앙의 중심이 로마로 옮겨가게 되지요.
그런데 그 무렵에 아폴로라는 선교사가 에페소에 왔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의 유다인 출신인 그는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가르쳤던 선교사였습니다(사도18,24-25). 그가 워낙 달변(達辯)이었던데다 열정을 가지고 에페소 시민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므로 이미 에페소에 도착해 있던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도 아주 반갑게 그의 설교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활동에 이어 불과 성령의 세례를 받고자 하셨고, 또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도 당신께서 받으신 불과 성령의 세례를 주고자 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도 인정했던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는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계승하고 수행해야 할 역사적 사명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있었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는 아폴로에게 그리스도인들의 사도직 활동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길을 정확히 가르쳐주었습니다(사도 18,26).
이 부부의 활약은 바오로가 직업이 같았던 평신도 부부와 동업하면서 이 노동으로 만난 부부를 상대로 선교사로 양성했다는 것, 그리고 그 수준이 선교사 아폴로를 한 수 가르쳐줄 정도의 성경 지식과 선교 사명 의식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높았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는 아퀼라보다도 프리스킬라의 이름이 앞에 나오게 될 정도로 여성 평신도의 역할이 돋보였다는 것 등을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그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인생길을 따라간 평신도 사도직의 모범이라는 것도 알게 해 줍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도 강완숙 골롬바를 비롯한 여성 평신도들의 빛나는 모범이 있듯이, 우리 교회에서도 평신도 사도직의 수준이 향상되기를, 더욱이 여성 평신도들의 수준이 향상되고 그 역할도 더욱 커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