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간 금요일(2023.8.18.) : 여호 24,1-13; 마태 19,3-12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원로들과 우두머리들과 판관들과 관리들 같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또 어떻게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던 바빌론 평원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수메르 문명 안에서 살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의 조상들은 노아의 후손들로서 대홍수로 심판받아야 했던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살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대기근이 들어 우여곡절 끝에 야곱의 일가는 이집트로 내려가야 했는데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있어서 비옥한 고센 땅에 자리잡고 4백여 년 동안 번성하며 살다가,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파라오가 들어서면서 고생스런 노예살이가 시작되는 바람에 다시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다시 이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게 하신 약속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들려줌으로써 여호수아는 백성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이로 말미암은 민족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신앙과 정체성을 잊어버릴 때마다 유혹을 당하고 시련을 겪으며 심지어 갈라지기도 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민족의 구성원은 개인들이지만 민족의 신앙과 정체성을 기억하고 보전할 수 있는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 이래로 안식일이 되면 반드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면서 자신들의 뿌리를 상기했고 자신들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야 함을 다짐해 온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부의 이혼에 관한 바리사이들의 질문, 즉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는 엉뚱한 질문을 받으시고는 여호수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분과 이들을 부부로 맺어주신 분은 하느님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성가정은 모든 부부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성가정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은 뿌리이신 하느님을 기억하는 데 있습니다. 

부부의 일치는 하느님과의 통공을 바탕으로 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메리지 엔카운터(Marriage Encounter) 운동에서 강조하는 부부간 대화나,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강조해 온 가족 기도가 모두 하느님과의 통공에 바탕하여 부부지간이나 부모와 자식 간에 통공할 수 있다는 소중한 지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발하는 정결 또는 독신 서원 역시 평신도들의 가정이 성화될 수 있는 비결, 즉 하느님과의 통공을 정확하게 지향하고 있으며, 수도자들이 발하는 정결 또는 독신 서원 또한 수도 가정에서 이룩해야 할 형제애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통공을 먼저 이루어야 부부가 일치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가정의 성화를 이룩할 수 있는 혼인 성사의 품위는, 사제의 독신 생활이 하느님과의 통공을 바탕으로 평신도들과의 통공으로 나아가서 교회의 일치를 이룩할 수 있는 성품 성사의 품위와도 본질상 동일한 것입니다. 

수도자들이 서원하는 정결 허원 역시 ‘하늘 나라를 위한’(마태 19,12) 은총이라고 가르치는 공의회의 가르침(수도생활 교령, 12항)에 따라서, 수도 가정의 형제애를 이룩하는 차원을 넘어서 가정 성화를 이룩해야 할 평신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한 당시에 “봉헌 생활이 교회와 세상을 위한 소중한 선물임을 보여 주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매우 겸손하게 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봉헌 생활을 간직하지 말고 사랑받는 이 나라 곳곳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 봉헌 생활을 나누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꽃동네 사랑의 연수원, 2014.8.16.).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을 닮고 세상을 돌보라는 위임을 받았던 인류의 첫 부부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저질렀고, 그 벌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하느님과의 통공을 이루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첫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일 만큼 자식 교육에도 실패한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자렛 가정의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 성령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였고, 주변의 몰이해와 따돌림 속에서도 아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키워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 그러한 자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열두 살 무렵 이전에는 전적으로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양육으로 성화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비결 역시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통공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가정을 성화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과 먼저 통공을 이루십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