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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그 누구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
  • 김혜선
  • 등록 2015-07-22 15:13:53
  • 수정 2015-07-22 15: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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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프레스 [기고]에는 독자로부터 기고된 글을 게시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반론 등을 제기할 경우 언제든 게재할 방침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이 묻어난 순교 정신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신앙 공동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는 거대한 세속화의 물결과 마주하고 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사방에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수많은 세력의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선조들이 일궈낸 순교의 땅에서 우리는 그 누구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의지로 불타는 순교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교회와 신앙인은 기득권을 가진 무리와 악의 공범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언론의 자유와 존엄을 빼앗긴 형제의 고통 속에서 무관심한 세상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진리를 증언하며 참된 형제애의 사랑으로 어루만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불의를 보아도 눈감아 버리고 악에 복종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나 교회의 희망은 사라진다.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복음 말씀은 이 시대에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양들을 이끌어야 할 목자가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면 그 양을 찾으러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길을 나서는 목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행동은 고사하고, 잃어버린 길을 어렵게 스스로 되찾아온 양을 기쁘게 맞이해야할 목자는 자리를 비우고 있다. 골프 원정 여행이나 물 좋은 곳으로 지극히 세속적인 부에 치우친 휴가를 즐기는, 사제의 본분을 망각한 목자만이 있을 뿐이다.


목자없는 양과 양을 돌보지 않는 삯꾼이 아니라 착한 목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는 신실한 목자를 오히려 양들이 길을 헤매며 찾아 나서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순명하는 사람은 사랑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이나 바른 쓴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기울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도자의 참모습은 그때 드러난다.


베드로는 열두 사도의 으뜸이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는 그 분을 첫 번째 교황으로 모시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려고 하였기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의 위치는 확고했으며 주님께서도 베드로를 인정하셨다.


오로지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야말로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양들을 성실하게 보듬어주는 현 시대의 우뜸 목자이며, 거대한 세속화의 물결에 빠져 있는 주교나 사제들을 향하여 가차없이 불호령을 내리는 교황의 모습은 이천년 전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 구세주로서 전 세계인에게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될 수 있다고 쉽게 말한다. 소수 의견은 다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도 말한다. 정말 그럴까? 진리는 정말 다수의 의견에 있는 것일까? 세상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느님께는 통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으셨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상처가 많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목자들의 당연한 사명이며 몫이다.


그러나 상처받은 양들을 오히려 회피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양들만 골라 그 안에서 안일하게 지내며 생존법을 터득하는 우물 안 바리사이 목자를 권력자로 추앙하는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은 세상이다.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사이들은 '율법대로'라는 말을 인용하며 사사건건 예수님의 행동에 투덜거렸다. '분리와 격리'를 뜻하는 바리사이들은 자기들끼리 민중과 구분되어 법을 따지고 권위만을 내세우며 교만하게 살았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인식하지 못한 채 권력과 명예와 재물이 숭배 받을수록, 진리와 정의와 평화는 가려지고, 진실은 덮이고 거짓이 판을 친다.


아무런 죄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주님은 억울한 삶과 불공평한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셨다. '억울함의 상처'가 십자가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어떠한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담담히 판결을 받아들이셨다.


상처 받은 가슴 떨리고 용서하기 힘든 분노가 솟더라도, 주님의 자녀이기에 모든 십자가를 온전히 끌어안아야 한다. 그 누구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진리 안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 불의한 세상이 참으로 견디기 힘겹지만 선조들의 자랑스런 순교의 피를 이어받아 사방에서 위협받고 있는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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