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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끊긴 세상
  • 석일웅 수사
  • 등록 2015-07-23 13: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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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못된 꿈을 자주 꾼다. 내 스스로 겨우겨우 제압해 놓은 상상이 꿈에서 해방이 된다. 그 꿈속에서 형체 불분명한 나는 떠 올리기 두려운 잔인한 괴물이다. 매일매일 정말 많은 그러나 같은 무리의 개들을 수 십 가지의 방법으로 도살한다.


그 꿈속에선 감추어진 것들이 현실에서 보다도 더 잘 보인다. 막혀있는 길. 희망이란 없다. 나아갈 길이 실종 되어서가 아니라 돌아갈 길이 막혀 있기에. 절망. 전부를 다 빼앗기고 목숨 하나 겨우 남아 있는 이들이 돌아 갈 길 조차 막혀 버린 지점. 그 곳에서 몸부림들이 웅성거리고 마침내 조직되고 폭발한다. 그 폭발은 어떤 소통도 거부하는 사생결단의 유일한 언어가 된다.


그 두려운 꿈속에서는 일 프로의 갑들이 재화의 구십 프로를 쥐고는 거들먹거리며 농락하는 세상만 있다.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조롱 받으며 나머지 구십 구 프로의 을들은 남은 부스러기 십 프로의 재화를 두고 혼신을 다해 뜀박질을 하는 시장에서 산다. 세상은 각자의 기여와 양보로 꽃을 피우는 공동체도 더 이상 삶을 가꾸는 터전도 아니다. 소중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생명을 걸고 싸우는 사생결단의 각축장일 뿐.


그 꿈속에서 을들은 혼자서 때로는 여럿이 중얼거리거나 탄식한다.


강이란 강을 있는 대로 아작 내고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갔는지 모르지만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동원할 수 있는 온갖 교활한 폭력과 협잡과 비리와 거짓말로 나의 권리인 정치권력을 도둑질해 간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손에 쥐고 싶은 평생의 소원이어서 그렇게 했겠지 여기마. 권부의 핵심이 젊은 여성 교포의 고결을 덮쳐 있는 대로 더렵혀 놓고도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 소식이 없는 건 수치가 무언지 모르는 개라서 그러려니 하마.


말의 유통을 장악해서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비트는 일쯤이야 기본 중의 기본일 테니 시비를 가리려는 일이 부질없음을 안다. 검찰, 경찰, 국정원을 줄 세우고 하수인으로 부려 먹는 것은 그러지 않으면 생명부지 못할 처지여서 치는 발버둥쯤이라고 봐 주마. 겁을 집어 먹은 개가 더 사납게 으르렁 거리듯 여차하면 빨갱이로 누명 씌우고 종북이라는 저주로 낙인을 찍는 짓은 그래야만 간신히 숨이라도 쉬며 살아남을 터여서 그럴 것이니, 까짓것 그리해라.


달랑 하나 남은 목숨으로 몇 십일 몇 백일을 굴뚝 꼭대기에서 버티다 내려 온 노동자들의 인신을 구속하는 절차가 그리도 신속했던 것은 두렵고 떨리고 다급했던 속사정이 있어서겠지. 때려서 죽이는 것도 모자라 쫒기는 노동자를 불로 태워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본성이라는 데야 어쩌겠나. 가난한 주머니의 먼지마저 탈탈 털리면서 빼앗길 것이 아직 남아 있음을, 그래서 줄 것이 아직 남아있음을 다행이라 여기마.


청에 빌붙고, 일본에 굽신거려서야 떡을 얻어먹고 살아남은 전력이니 미제의 영광스런 앞잡이로 살아야 할 운명일 테고, 분단의 비극쯤이야 코딱지만한 권세를 놓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이용해 먹을 먹거리이어야만 할 것이라는 거 안다. 외세에 빌붙어야만 살아남을 신세이니 평생 쓰지도 못할 무기를 사들이고, 안방을 허물어서라도 군사기지를 지어 바쳐야 한다는 것 안다.


빌붙어 살아온 그 기세로 자기들 편이 아닌 생때같은 304명의 생명쯤은 한 배에 태워 단 번에 학살을 해 줘야 비로서 한 건한 기분일 것이라는 것 알아주마. 짓눌려 지친 몸뚱아리로 애통해 하는 이들. 그들의 이웃이 되어 손에 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인 처지로 함께 울고 다독이는 이들. 이 둘의 연대를 불타는 시샘과 정신병적 불안감으로 어떻게든 떼어 놓고 침 뱉어 주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도 네 편이 아니어서겠지.


그 꿈에서 나오지만, 나온들 걸어 들어 갈 현실은 꿈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현실에만 있고 그러므로 현실에서만 반드시 꿈을 바꾸는 힘이 있다.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니, 이미(마태오 3:10) 와 있음을 믿으며 그 믿음은 현실에서만 자란다. 아무도 모르지만 반드시 시간은 차오르고 때는 온다(마태오 24, 마르코 13). 돌들이 소리를 지르며(루카 19:40) 폭발할 것이다. 고함이 터져 나올 것이고 성벽은 무너져 내릴 것임을(여호수아기 6) 믿는다.


그 때 견고하게만 보였던 성벽에 침묵으로 동조했던 교회의 갑들도 뜨겁지도 차지도 않았으므로 내뱉음(요한 묵시록 3)을 받을 것임을 믿는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공동체마저 짠맛(마르코 9:50)을 잃게 한 책임은 끌려나와 공동체 앞에 서게 될 것임을 믿는다(요한복음 8:1~11).


반드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됨을 믿는다(루카 13:30). 세상이 전복(마태오 5:3~12)될 것이고 그래서 결국 바로 서게 됨을 믿는다. 終








[필자소개]


석일웅 : 작은형제회 수사. 생태영성이란 말이 멋있어 보여 아직 산만한 덩치의 철없는 꿈을 꾸는 수도자이다. 작은 것에 삐지고 받는 상처를 맛있는 것 먹는 것으로 푼다. 나이를 핑계 대면서 경당 보다는 휴게실을 더 궁금해 하고 성경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더 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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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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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ann2015-11-28 08:06:10

    저도 독일 Aystetten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천주교 교인입니다. 올리신 글을 다 읽고 나서 꼭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함께 맥주한잔하시지요. 물보다 저렴한 독일 맥주 제가 맛있는 안주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rb007@naver.com 정현규 요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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