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부터 많은 국내외의 법학자, 변호사들이 일곱 차례의 온라인 세미나와 세 차례의 방송좌담회를 가졌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필자는 그 진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며 ‘사법개혁 특별법’의 제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1.2%가 폭로하는 진실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4년간, 우리 사법부가 국민참여재판을 허용한 비율은 전체 대상 사건의 단 1.2%에 불과했다. 그 효력도 권고에 불과한 국민참여재판이다. 연간 배심원으로 참여한 시민은 1500명을 넘지 못했다.
반면 미국은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소환된다. 영국은 민사 배심원만 11만 명이 넘고, 독일의 참심원(시민법관)은 2020년 기준 12만 3000명에 달한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제도 운영의 차이가 아니다. 사법이 '국민의 권리'인가, '전문가의 전유물'인가를 두고 갈라선 철학의 차이다.
1.2%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14년 동안 국민 주권을 얼마나 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성적표다. 그리고 이 숫자의 뿌리를 찾으려면, 우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죽산 조봉암 — 나라의 기둥을 세운 자의 최후
1959년 7월 31일 새벽, 서울 서대문형무소.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농림부 장관,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맞붙었던 야당의 기수 조봉암이 교수대에 올랐다. 죄명은 '간첩'. 그러나 52년이 지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조봉암이 농림부 장관으로서 이룩한 농지개혁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으로 지주 계급의 토지 독점을 해체하고 농민에게 땅을 돌려준 이 개혁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농민들이 '이 땅은 내 땅'이라는 의식으로 나라를 지켜내게 한 심리적 보루였다. 동시에 토지 독점의 해체는 교육 기회를 전 국민에게 열어 이후 '인재강국'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았다. 서양사로 치면 기원전 2세기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개혁, 그 현대판이었다.
그 위대한 업적의 대가로 그는 무엇을 받았는가. 증거는 부실했고, 자백은 고문으로 얻어졌으며, 대법원 상고 기각 후 단 13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권의 의중을 충실히 따른 사법부는 나라의 기둥을 세운 인물에게 '간첩'의 낙인을 찍어 처형했다.
2011년 무죄 판결이 내려지던 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판결을 내린 법관들은 어떤 반성을 했는가. 어떤 사과가, 어떤 제도적 성찰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침묵'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 사법의 구조적 원죄다.
단절되지 않은 사법부의 불의 — 일제에서 독재로, 독재에서 자본으로
조봉암 사건을 고립된 역사적 비극으로 보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패턴의 표현이다.
일제강점기에 양성된 법조인들은 해방 이후에도 법복을 벗지 않았다. 반민특위가 친일 법조인을 청산하려 했지만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오히려 반민특위가 해체되었다. 일제 사법의 DNA는 그대로 대한민국 사법부로 이식되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논리가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하는 논리로 재활용된 것이다.
일제가 낳은 기형아 검찰과 판박이다.
그러면서 더욱 위중한 죄악을 저질렀다.
군사독재 시대에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긴급조치 위반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노동운동가들에게 쏟아진 유죄 판결들은 훗날 하나하나 무죄로 뒤집혔다. 그러나 그 판결들을 내린 법관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사법부의 '충성 대상'은 바뀌었다. 독재 권력 대신 자본 권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재벌 총수의 횡령과 배임에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집행유예가 남발되고, 생존권을 외치는 노동자에게는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내려진다. 사학 재단의 전횡에는 '사유재산권'의 방패가 쳐지고, 교육이라는 공유 자산은 사유물로 고착된다. 조봉암이 토지를 농민에게 돌려주었듯 교육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그 역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조봉암을 죽인 사법부와 오늘의 사법부가 본질적으로 다른가. 인적 계보는 바뀌었을지 몰라도 구조적 DNA는 이어져 있다. 단 한 번도 내부의 불의를 공식적으로 청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프랑스·대만이 선택한 길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과거는 묻어야 한다." 이런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준다.
독일은 나치 법관들이 저지른 '법률적 불법(Gesetzliches Unrecht)'을 정면으로 단죄했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는 선언했다. "정의에 극단적으로 반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이 원칙 위에서 독일은 사법부의 과거를 공식화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사법을 재건했다. 프랑스는 비시 정권 부역 판사들을 숙청하며 사법부의 정당성을 새롭게 구축했다. 두 나라 모두 그 청산이 완전하지는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공식적 단죄'와 '제도적 재건'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우리는 그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했다.
가장 주목할 사례는 대만이다. 대만 역시 오랜 계엄 통치 아래 사법부는 정권의 도구였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었다. 그 불신을 직시한 차이잉원 정부는 2017년 사법개혁국책회의를 열었고, 2020년 '국민법관법(國民法官法)'을 제정해 2023년 1월부터 시행했다. 직업법관 3명과 국민법관 6명, 총 9명이 동등하게 사실인정·법령 적용·양형을 결정한다.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이 평결에 구속력이 없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과 역사적 경험이 닮은 대만이 해낸 것을,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다.
일본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09년 도입된 재판원 제도 이후 시민 참여율과 만족도는 94%에 달했고, 사법 신뢰도는 크게 높아졌다. "전문가가 아닌 시민이 어떻게 재판을 하느냐"는 우려는 현실에서 보기 좋게 깨졌다.
사법권은 국민 주권이다
사법 개혁을 단순한 제도 개선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 그 본질은 주권의 문제다.
헌법 제1조는 선언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01조는 말한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이 두 조항은 충돌하지 않는다. 제101조는 제1조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조항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수단이 목적을 압도할 수 없다. 사법권은 '법관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 주권의 위임'이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주권자의 통제를 받는다. 반면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임명직 법관들이 독점한다. 이 구조가 지속되는 한, 사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적 권력기관이 될 위험을 내포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이 직접 재판관이 된 것도, 몽테스키외가 시민 배심제를 강조한 것도 이 원리 때문이다. 사법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인류 문명이 수천 년에 걸쳐 확인해온 진리다.
사법개혁특별법안의 두 개의 축
이제 구체적인 입법 과제를 이야기할 때다. 우리가 제안하는 '사법부의 역사적 과오 단죄 및 사법개혁 특별법'(약칭 사법개혁특별법)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축: 역사적 청산
조봉암 사건을 비롯한 사법 살인과 반민주적 판결의 역사적 기록을 공식화한다. 유신과 군부독재시절의 오심들, 자본·사학 권력 유착 판결에 대한 전수 조사를 위해 독립적 시민 조사기구를 설치한다. 이것은 보복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기억과 반성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기관은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사법부의 과오를 공식화하는 것이 사법부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법부를 구하는 일이다.
둘째 축: 제도적 재건
▶ 배심제 확대: 무죄를 다투는 형사 사건, 정치인·재벌 범죄,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에 시민 배심원 참여를 원칙화하고 평결에 구속력을 부여한다.
▶ 참심제 도입: 아동·노동·의료·조세 등 전문 분야에 해당 분야 시민 전문가를 참심원으로 참여시킨다.
▶ 증거개시제도 + 집중심리 의무화: 미국식 디스커버리(discovery)를 도입해 검사가 모든 증거를 피고인 측에 공개하도록 하고, 재판 지연 관행을 끊는다.
▶ 법왜곡죄 도입: 독일 형법 제339조처럼 법관이 고의로 법을 왜곡한 판결을 내린 경우 형사책임을 묻는다. 이 법안은 이번에 국회에서 확정되었다.
▶ 그 외에 법원조직의 개편 등이 제대로 검토되도록 한다. 직업법관의 정의를 새롭게 하고 선발과 운영 등에 관한 개혁안을 만든다.
대만·일본 모델처럼 시민과 법관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구조를 목표로 한다. 이 특별법의 내용과 방향은 법조 엘리트가 아닌, 추첨형 시민의회가 만들어야 한다.
추첨형 시민의회로 법안을 만들자— 진짜 국민 주권의 실현 장치
"법 모르는 시민이 어떻게 개혁안을 만들 수 있느냐." 이 우려는 이미 전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반박된 오해다.
추첨형 시민의회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다. 유권자 명부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하되, 성별·연령·지역·직업·학력으로 계층화(stratified sampling)하여 대한민국 인구를 정확히 반영한다. 300~500명 규모로, 4~6개월에 걸쳐 총 8~10회 주말 집중 숙의를 진행한다. 전문가(법학자·판사·변호사·피해자) 진술을 듣고, 소그룹 토론과 전체 토론을 거쳐 최종 개혁안을 도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은 국회에 강력 권고안으로 제출되며, 국회는 특별법 심의 시 이를 최우선 검토해야 한다.
이미 증명된 성공들
아일랜드(2016~2018)에서는 시민의회가 동성결혼·낙태 개헌을 주도했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60%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프랑스(2019~2020)의 기후시민의회는 149개 제안 조항을 도출했고, 정부와 의회의 정책 의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채택 과정에서 일부 조항이 후퇴하는 한계도 있었지만, 전문가와 정치인만의 밀실 논의로는 결코 불가능했을 의제를 국민 앞에 올려놓았다는 것 자체가 시민의회의 힘이었다. 일본의 재판원 제도 도입 과정에서도 시민 참여를 통한 공론화가 사회적 신뢰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2018년 국민헌법자문특위,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시민의회가 같은 방식으로 성과를 냈다. 시민은 법조문을 몰라도 정의와 상식을 안다. 오히려 전문가만의 폐쇄적 논의가 조봉암 사건을, 재벌 솜방망이 판결을, 노동자 수십억 배상을 반복해왔다.
평범한 국민 300명이 6개월 동안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물. 그것이 엘리트의 설계도보다 훨씬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정부에서 이를 추진하는 예산을 세우면 된다. 지금 시행중인 기후시민의회처럼. 사법개혁특별법의 진정한 출발점은 바로 여기여야 한다.
'영혼의 농지개혁'을 향하여
1949년 조봉암의 농지개혁은 땅의 주인인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었다. 지주 계급이 독점하던 생산수단을 해방한 그 개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 사법이라는 권력을 법조 엘리트에게서 주권자 국민에게 돌려주는 '영혼의 농지개혁'이다.
조봉암이 쓰러진 자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분노만이 아니다. 그 분노를 제도로 만드는 지혜다. 과거의 불의를 외면하는 법치는 새로운 불의의 씨앗이다. 역사적 청산과 제도적 재건, 이 두 축을 담은 사법개혁특별법이 그 지혜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은 최빈국에서 세계 6~7위 종합 국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이 위대한 국민이 사법 민주화만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만이 했고, 일본이 했고, 독일이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나라에서 개혁의 출발은 숫자였다. 직시하기 불편한 숫자 하나.
'1.2%'. 그 부끄러운 숫자를 바꾸고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는 것이, 조봉암이 목숨으로 일군 이 나라에 우리가 바쳐야 할 가장 정직한 헌사(獻辭)다.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