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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길
삼일을 비가 옵니다.
쏟아지는 빗물이 땀에 젖어
어깨를 짓누릅니다.
퉁퉁 불어버린 밀짚모자처럼
이제는 감각조차도
희미해졌습니다.
십오 일을 걸어 왔습니다.
발꿈치를 따라 수많은 그림자가
빗물 위를 걷고 있습니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은 한참 남았는데
사방에는 어둠이 깔리고
짙어가는 먹구름이 발길을 재촉합니다.
마음은 이미 저 산을 넘었습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마저
고갯마루에 올라섰습니다.
밟고 있는 검은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겹겹이 쌓입니다.
바다 내음이 납니다.
걸어야 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러나 걷는 내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다시 길을 잡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비가 쏟아지고
빗물이 쌓여도
바다 내음 위로 걷고 있습니다.
◈ 출처 : 이종인 시집.『남은 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