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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 (니노 로 벨로)
  • 김혜선 런던 통신원
  • 등록 2015-08-07 06: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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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로마에 체류하면서 바티칸 제국에 관하여 1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특파원과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니노 로 벨로 작가가 역사책이나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는 교황과 바티칸에 관련된 흥미로운 희한한 이야기들을 30여 년 동안 모아 온 것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인 바티칸 시국과 성 베드로좌의 주인이었던 선대 교황들, 특히 별난 선임 교황들, 바티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바티칸과 관련하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맛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 덕분에 아직 가보지 않은 로마를 구석구석 재미있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고 교황 연대표의 부록을 통해 그 시대에 맞추어 역대 교황들의 행적을 떠올리며 로마여행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바티칸 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은 성 베드로 광장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그어진 하얀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선은 탱크를 몰고 로마로 진군했던 히틀러의 군대도 결코 넘지 못했던 선이라고 한다.


그 하얀 선을 넘으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넓이는 약 40만 제곱미터에 달하며, 축구장 여섯 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성 베드로 성당은 규모 면에서 단연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30개가 넘는 커다란 동상들이 세워져 있고 따로 분리된 44개의 제단, 그리고 10개의 돔이 있다. 해마다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웅장한 이곳을 다녀가며 어떤 생각들을 떠올렸을까?


바티칸 시의 중심 건물이며, 베네딕토 16세 교황까지 기거했던 '사도궁'에는 1,400개가 넘는 방과 1,000여 개에 달하는 계단, 그리고 스무 개의 안뜰이 있다. 20여 명의 원예사들이 1년 내내 정성들여 돌보아,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내는 바티칸의 숲과 정원은 수십 개의 대리석으로 된 천사상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늘이 드리워진 오솔길, 푸른 월계수 울타리를 따라 타는 듯 붉게 만발한 카나꽃과 바티칸 곳곳에서 물을 뿜어내는 갖가지 모형의 분수들이 파란 이끼가 덮인 연못 위 수련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스칼라 산타('거룩한 계단'이라는 의미)는 예수께서 본시오 빌라도에게 사형 언도를 받던 날 오르내렸다고 전해지는 계단이다. 티루스이 대리석으로 된 스물여덟 개의 계단 곳곳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들은 유리로 덮여 있다. 이 계단은 콘스탄티노 황제의 어머니였던 성녀 헬레나가 335년 로마로 가져왔다고 하며, 16세기 말 교황 식스토 5세에 의해 라테라노 성당 건너편 건물에 설치되었다.


계단을 설치한 바로 그 날부터 신자들은 무릎으로 기어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마련한 짧은 기도문을 바치는 관습은 그때부터 내려온 것이다. 계단 꼭대기에는 중세 이전에 교황들이 사용하던 개인 기도실이 있다.


1870년 9월 20일 저녁, 교황 비오 9세는 교황의 세속 권한을 박탈하기 위해 로마로 쳐들어 온 이탈리아 군대에 의해 거룩한 계단까지 밀려났다. 이 계단 앞에 이른 교황은 관례대로 무릎으로 기어서 계단을 올라갔고, 그 꼭대기에서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슬픈 눈빛으로 축복하였다. 바티칸 내로 들어간 비오 9세 교황은 그 후 다시는 바티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바티칸에서 젊은 두 신부에게 이렇게 물었다. "신부님들은 바티칸에서 지낸지 얼마나 되었지요?" 한 신부가 바티칸에 온지 3주 되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교황은 "아, 그럼 바티칸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다 되었겠군요."라고 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또 한 신부는 "저는 여기서 3년째 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교황은 그를 바라보며 "그럼 당신은 바티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겠군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바티칸에서의 3주와 3년의 앎의 차이가 오히려 반전된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만큼 바티칸을 가까이 접할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교황의 말일 것이다.


재미있는 바티칸 통계자료에 의하면 바티칸 시국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구역 내에 1,000명가량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40배 높다고 한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호텔이나 식당 등 유흥 시설은 전혀 없으며, 신호등, 대중교통, 이발소, 세탁소, 신문 판매소, 학교 등의 시설 또한 없다.


국기는 하얀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얀 색 면 위에는 열쇠 2개가 십자 모양으로 서로 교차되어 있고, 그 위에 교황이 쓰는 삼층관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국기가 바티칸 국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티칸의 통금 시간은 출입구를 폐쇄하는 시간인 밤 11시 30분이다. 바티칸 영내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 시간이 지나서 돌아오려면 특별히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바티칸을 찾은 방문객들은 국경이 닫히기 전에 그곳을 떠나야 한다.


바티칸에서 발행하는 동전의 한 면에는 교황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 면에는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좋다" 혹은 "이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가진 자의 여유로움과 가난한 자의 서러움, 자선하는 자와 눈먼 자가 떠오르는 문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 시인 맥스 어만의 '진정 바라는 것'이라는 작품을 자신의 집무실 벽에 걸어 놓고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되새겨 보곤 했다고 한다.


"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며 아무리 자신이 보잘 것 없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아야 한다.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나이든 사람들의 충고는 겸손히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품위 있게 양보하며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한다. 서로 속이고 힘들고 꿈이 깨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기에 늘 평안하고 행복하려고 애써야한다."


그 당시 바티칸 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이 시를 통해 교황이 되새겨본 의미를 조용히 묵상해보며, 부조리로 얼룩진 한국사회와 억눌리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추해본다.


그동안 교황들이 기거해왔던 화려한 사도궁이 아니라 손님들이 잠시 묵고 가는 게스트룸에서 지내며 청빈한 생활로 몸소 가난한 사람과 박해받는 사람들, 인권과 평화를 유린당한 사람과 소외받는 사람들의 절규와 함께하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든든한 지도자가 지금 바티칸 제국의 수장인 것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큰 신비의 나라 바티칸에서 '악의 축'을 몰아내고 새로운 아침을 밝힐 변화를 추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하여 기도하며 읽어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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