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9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 꼬마가 낯선 주변을 돌아본다. 부모 따라 여행을 다니면서 하루 이틀 이 집, 또 며칠은 저 집에서 자다보면 곤할 대로 곤한 몸이어서 어디든 머리만 베개에 대면 잠이 들지만 아침에 눈을 뜰 적마다 “여기가 어디지? 왜 여기 와 있지?”라며 삶의 현주소를 묻는 신기함이 이어지리라. 시우가 나를 보는 눈도 “이 할머니 낯이 익은데 누구시더라?”는 표정이다. 간간이 스카이프로 얼굴을 익히지만 자칫하면 조부모는 몇 해 만에 한 번씩 보는 ‘해외동포’ 격이다.
그러다 제 엄마가 다가와 다독여주자 “엄마, 우리 엄마!”라며 꼬옥 안긴다. 그 낱말을 발음하는 그 음성이 얼마나 달콤한지 옆에서 듣던 나마저 “내게도 저런 엄마가 있었나?” 헤아리게 된다. 빵기와 내가 팔카데 슈퍼에 들어가 장을 보는 동안에도 시우가 제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고 얼굴을 부비고 모자를 씌웠다 벗겼다 엄마 앞에서 몸을 흔들고 춤을 추며 얼마나 재롱을 부리는지 지나가는 이탈리아사람들이 죄다 그 재롱잔치를 구경하며 미소를 짓더란다.
시우가 꼬라지를 부리거나(오늘 저녁밥상에서도 아빠한테서 무슨 징계를 받자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대성통곡을 멈추지 않아서 아빠가 달래서 데리고 나왔다) 애교를 부리는 것도, 그 말 많고 시끄러운 것도 꼭 빵고 삼촌을 닮았다고들 하는데 빵고도 어렸을 적에 얼마나 내게 살갑게 구는지 보스코 앞에서 “여보,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 전적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당장 그 남자를 따라 도망갈 거에요.”라면서 품에 끌어안고 했는데 어쩌면 그런 점까지 닮았을까?
10시경 묵는 집을 나서서 슈퍼에 들러 산펠레그리노 고개(Passo di San Pellegrino)로 올라갔다. 숲속으로 차를 몰고 팔카데 고원으로 들어가 풀치아데 산장(Rifugio Fulciade: 1972m)까지 걸어갔다. 눈앞에는 마르몰라다 맞은 편 준봉들이 3000미터 봉우리들을 자랑하고 서편으로는 멀리 산마르티노 병풍산(Pale di San Martino)의 거창한 영봉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그렇게 숱하게 찾아온 알프스건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알프스가 너무 커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지리가 에워싸고 그 많은 유럽인들이몰려들어도 북적거리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이탈리아인들은 게을러서 휴가를 가도 매년 같은 곳에 가서 달포를 지내다 오는 습성이 있고 풀치데 고원에서도 풀밭에 일광욕이나 하면서 하루 종일 지껄이다 서너 시에 하산하는 한가로운 여가를 갖는다.
차려간 것으로 점심을 하고 우오모(Uomo: 3010)봉과 발프리에다(Valfreida: 3009m)봉 사이로 난 치렐레(Passo delle Cirele: 2683m)고개까지 올라가서 마르몰라다의 위용을 감상하기로 산행에 나섰지만, 2000미터가 넘으면 어지럼증을 보이는 내 고산병이 나타나고 네 살짜리 시우가 걷기 힘들어하고 보스코는 나처럼 예쁜 여자 혼자두면 누가 업어간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산장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빵기와 지선이가 시아를 데리고 산으로 갔다. 하지만 무리하게 돌서들 코스를 택한 탓으로 모두 지쳐 세 시간 만에 2500미터 지점에서 하산하고 말았다. 엄마아빠가 돌아오자 시아가 얼마나 큰 소리를 엄말 부르며 초원을 달려가는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 그대로였다.
오늘이 주일이어서 미사시간 맞추어 산을 내려와 팔카데 산세바스티아노 성당에 들러 6시 30분 미사에 참석하였다. 산마르티노 병풍산을 배경을 지어진 성당에 휴가 온 가족들이 남녀노소 함께 오는 미사는 참 보기에도 흐뭇하였다. 시아는 이탈리아말 미사 통상문과 성가를 따라 읽으면서 얌전히 몰입하고 시우는 몸을 비비꼬면서도 딴 어린이들처럼 소음을 내지 않았다.
저녁은 빵기가 나서서 파스타를 요리해냈고 얼마나 맛있는지 웬만한 식당에서 먹는 요리보다 훨씬 맛있다면서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었다. 밤 산보 길에 어제 본 이디오피아 이민 간 여인이 시아 또래의 딸 안젤라와 시우보다 좀 큰 아들 테오도로스를 데리고 산보 나온 길이어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 나이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테라스에서 웃음가득한 눈으로 손자손녀의 움직임을 따라다닌다. 저 노인들도 우리도 이렇게 손주들과 정들다 헤어지면 한 동안 정서적 공황상태에 빠질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