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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도 종교도 현실을 정직하게 보아야 한다"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8-14 1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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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으로 뜨거웠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도 벌써 일년 전의 일이 됐다. 한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세 장면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교황은 청와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주교단 앞에서 가난한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그 후 일년, 우리 사회와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민주주의는 더 진전되었는가. 세월호 진상은 밝혀졌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는 가까이 왔는가. 어느 하나도 ‘예’라고 말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세월호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종교는 부자를 편들어 종교재산 늘리기에 바쁘다.


한국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치, 종교, 언론, 사법부 어디 하나 제대로 하는 데가 없다. 한국은 집단적 우울증에 걸렸다. 체념이 일상화되고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사회를 보면 사회가 걱정되고, 종교를 보면 종교가 걱정된다. 세상은 종교 걱정에 바쁘다. 종교는 자기 살기에만 바쁘다. 종교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 이러다가 종교망국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1990년대 후반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할 때 나는 두 가지에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가난과 억압에 우선 놀랐다. 더 놀라운 일은 극심한 고통 중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가난한 사람들은 종교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한국에서 종교는 희망을 주고 있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한국의 종교에 희망을 걸고 있는가. 현실을 정직하게 보지 않는 종교는 희망을 줄 수 없다. 우리 개인도 종교도 현실을 정직하게 보아야 한다. 잘못된 현실에 내 탓처럼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현실을 고치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해야 한다.


종교가 있을 자리는 고통받는 사람 곁이다. 종교가 종교 밖으로 나가면, 세상도 살고 종교도 산다. 종교가 종교 안에 갇히면, 세상은 힘들고 종교는 부패한다. 종교가 부자를 편들면, 가난한 사람은 종교를 떠나고 부자만 남는다. 종교가 가난한 사람을 편들면,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종교에 남는다. 종교가 살려면 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 택해야 한다. 종교가 부자와 권력자를 편들면, 종교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종교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종교가 망하는 건 시간 문제다. 돈과 권력으로 종교를 지탱하려는 욕심은 모래 위에 집짓기처럼 헛된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종교는 실패한 종교다.


예수를 파는 사람은 많아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적다. 성서를 인용하면서 예수를 외면하는 경우처럼, 교황을 언급하면서 교황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황 마케팅에 나서도 교황 따르기는 주저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 교회와 사회 현실이다. 교황을 그저 구경만 할 것인가.


교황이 해마다 한국에 와도, 아니 예수나 부처가 매달 한국에 와도, 한국의 종교들은 과연 달라질까. 결국 우리 국민들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똑똑한 시민과 신자가 세상과 종교를 올바로 세울 수 있다. 가정과 일터에서 의롭게 사는 사람이 더 늘어나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평범한 의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의로운 사람이 의로운 세상을 만든다. 의로운 사람은 외롭지 않다.


지금 한국의 종교들은 누가 먼저 망하나 경쟁하는 것 같다. 정치와 종교 모두 한국처럼 엉망인 나라가 지금 전 세계 어디에 또 있나. 우울한 시대에 교황의 한 말씀은 적어도 기억하자. “고통 앞에 중립 없다.” 영화 <암살>에 나오는 염석진 같은 친일파는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 덕분에 아직도 설쳐대는 것이다. 여주인공 안옥윤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생각났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 우리 독립투사들이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아는 만큼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만큼만 아는 것이다.




※ 본 기사는 8월 13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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