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자전거
오월의 철쭉이 피고
라일락꽃이 막 피는 오후였네요
은빛자전거 금남로 골목에
꽃가루를 뿌리며 달려요
일찍 도청 앞에 가도 되는 날입니다
시내에는 계엄군이 쫘 악 깔렸어요
모두가 일심동체입니다
그런데 공수부대원 장교가
내 뒤를 따라왔어요
페달을 힘차게 밟았지만
나는 얼른 은빛자전거를 버리고
건물 계단을 뛰어올라갔어요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어서
앞을 보았는데 그때 이 빨갱이 자식
총알이 내 몸에 수없이 박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어요
자전거는 아직도 넘어진 채로
바퀴가 돌아가고
피를 쏟으며 선채로 하나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개머리판으로 나를 쓰러트릴 때까지
계엄군 장교의 눈을 보았는데
거기에 내가 보였어요
고아였던 나를 불쌍하게 여겨
광주5.18묘역에 묻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벌써
세월이 강물같이 흘러갔어요
내 자전거는 금남로를 달리고 있고
은빛머리에 면류관을 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