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공기업 마사회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 최진 기자
  • 등록 2015-09-15 10:12:34
  • 수정 2015-09-15 12:37:51

기사수정



용산 화상 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와 용산 주민들은 13일 노숙농성 600일을 맞아 지난 3년간의 학교 앞 경마도박장 추방 운동 과정을 담은 소책자를 발간했다.


대책위는 이 책자에서 경마도박장 건설이 주민과 지자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민 몰래 추진됐을 뿐 아니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총리의 지시사항도 무시하고 운영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대책위는 “도박장이 전혀 없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많은 사람이 도박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도심지에서 멀리 격리하는 것이 문명국가의 상식이다”며 “주거지·학교 앞에 지상 18층짜리 국내 최대 규모의 경마도박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주민 몰래 진행됐다는 것은 실로 경악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 시장은 “한국마사회는 교육환경 훼손, 주거환경 침해에 대한 주민과 사회 전반의 공통된 반대의견에 귀 기울여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학교 밀집지역에 초대형 도박장 건립은 유흥업 난립과 각종 범죄 발생 등으로 교육환경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도박장은 자라나는 세대와 학생들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 운영되는 것이 기성세대의 최소한의 도리다”며 “따라서 학교 앞 215m, 교실에서 보이는 전국 최대 규모의 경마도박장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경마도박장이 보인다. ⓒ 최진 기자


▲ 경마도박장에서 본 성심여자고등학교 ⓒ 최진 기자


진영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은 “6개 학교가 모인 서울 도심에 도박장을 열겠다는 마사회는 주민들에게 ‘공익을 우선시하는 공기업’이 아니라 교육환경의 파괴자일 뿐이다”며 “용산 도박장 이전 과정은 비리로 얼룩진 국민 무시 행정의 결정판”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도박에 빠뜨리는 화상경마장 확대를 반대하며 공기업 마사회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대책위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회에서 주거지·학교 앞 도박장 문제를 마땅히 해결해야 하지만 마사회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과 농림부도 더 이상의 비호·방관을 중단하고 적극적으로 도박장 폐쇄를 위해 조처를 해 달라”며 “국회, 지자체, 교육청의 더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또한 “현 정권과 농림부는 조속히 경마도박장을 도심지에서 추방하고, 마사회도 더는 용산 주민들과 마찰을 빚지 말고 즉각 경마도박장을 폐쇄하고 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와 용산 주민들은 경마도박장이 추방될 때까지 농성과 미사 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마도박장 반대를 위한 미사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경마장 앞에서 봉헌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회가 열린다. 대책위는 지난 6일 도박장 반대를 위한 천막농성 600일을 기념하는 문화제를 개최했다.


다음은 김율옥 성심여고 교장수녀의 감사편지 전문이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에 애쓰시는 한분 한분께>


이제 제법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들입니다. 해마다 더워지는 여름을 이곳 경마장 앞에서 보낸 것이 어느새 3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함께 나눈 사랑과 기쁨, 두려움과 고통이 우리 안의 믿음을 더 크게 하였고, 우리의 사랑을 더 깊게 하였으며, 우리 안의 연대를 더 든든하게 하였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큰 희망과 믿음으로 이 싸움을 계속해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믿기에 이 여정에 함께해온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되돌아보면 첫째 해의 여름에 우리는 작은 천막 하나로 여름 뙤약볕과 폭풍우를 견디며 길거리 서명을 받았고, 둘째 해에는 마사회의 기습개장에 대항하여 불편한 의자에 앉아 뜨거운 태양을 견디면서도 노랑 우산 하나로 기뻐하며 불볕더위를 견디었습니다. 셋째 해인 올해는 세 동의 천막에서 다시 개장을 한 경마도박장 입장객들에게 이곳이 학교 앞이라는 것을 알리느라 천막을 뚫고 들어오는 한낮의 열기와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꿋꿋하게 이곳을 지켜왔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지난 2014년 1월22일 천막을 치던 날로부터 600일을 기념하는 문화제 날입니다. 되돌아 기억하기에도 천막을 치던 그날은 지독히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우리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며 스티로폼 한 장에 은색 깔개를 덮개삼아 우리는 함께 추위를 견디며 이 자리를 지켰고, 한 밤중에야 천막을 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상대는 거대했습니다. 골리앗 같은 상대의 칼과 방패와 창에 비해 우리가 가진 것은 다윗의 조약돌 다섯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3년의 시간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뜻을 알리고 전하는 과정에서 반대서명을 요청하는 것도, 처음해보는 길거리 시위와 집회도, 경마장 앞과 국회에서의 기자회견도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마사회의 기습개장으로 인해 고소 고발을 당하고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의 경찰 조사, 지금까지 이어지는 법원의 가처분 결과와 소송,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을 통해 우리 안의 연대를 부수려는 작고 큰 비난과 모함들에 맞서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은 우리를 더 강하게 단련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거듭되는 비난과 모함은 우리가 왜 이 거리에 있는지 거듭 질문하고 답을 찾게 했습니다. 함께하는 이들의 수고와 노력을 보는 것은 포기하고 싶고 무너지는 마음을 추슬러 불안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수세미를 떠서 저 건물을 사겠다는 결기와 세상 끝까지 가더라도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사랑이 우리를 더 강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우리는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을 위한 이 싸움에서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여전히 경마장 추방을 외치는 우리의 노력에도 마사회가 화상경마도박장을 개장하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칠 수도 없습니다. 무너지는 무릎을 바로세우고 넘어지는 이를 일으켜 세우며 화상경마도박장이 우리 동네를 떠나도록, 더 이상 지역을 황폐하게 하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모아 싸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지켜야 할 생명이 있고, 아직 사랑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의 생명을 지키려는 ‘어미의 사랑’이!

‘죽음의 문화’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는 ‘생명의 힘’이!

올바른 경제 가치를 통해 정의로운 마음을 가르치려는 ‘교사의 사랑’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으려는 ‘참된 어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이 생명의 길에 사랑으로 함께 해 온 한 분 한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어렵고 힘들지만,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경험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존중과 연대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어렵고 힘든 길을 계속 가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매순간 우리는 되돌아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우리 생애 최고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과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한분 한분의 삶과 가정에 축복과 은총을 가득히 내려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김율옥 성심여고 교장수녀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