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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죽음의 시학 : 레드 툼
  • 김창규
  • 등록 2015-09-22 15:53:03
  • 수정 2015-10-26 09: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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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툼



비바람에 서리 찬 가을밤

아버지가 죽은 골짜기를 

다큐멘터리로 영화 속에 보았네요

보도연맹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오래전 알았지만 이렇게 구덩이에

처참하게 돌무더기에 묻혀

반백년 훨씬 넘게 볕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가셨다니 억장이 무너져

살아서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울음만 나와요


어머니 홀로 되어 자식 키웠지만

평생 눈물 뿌리다 얼마 전 돌아가셨지요

내 나이 어언 칠십입니다

어머니가 기다렸던 세월이에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전 세계 인민들에게 고하여

20만 명 이상을 학살한 이승만 독재자

그가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둔갑한 나라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고 책임지지 않는

미친 개 같은 역사를 

아버지가 죽어가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원수를 갚아 달라했겠지요


보도연맹원 가입시켜 비료도 주고 보호해준다고

그러더니 예비 검속하여 사흘 만에 끌려가

총살당한 아버지의 나이 스물일곱

아버지, 아버지 이름을 불러봅니다


빨갱이 무덤에 꽃이 피었어요

백세 할머니가 울면서 불쌍한 내 자식

누구의 뼈인지도 모르면서 막걸리를 따르며

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한 맺힌 세상을 훨훨 날아갑니다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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