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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죽음의 시학 : 범섬
  • 김창규
  • 등록 2015-12-02 16: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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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



안산 단원고등하교 사월의 꽃

눈부시게 피어나는 서귀포 봄꽃들 

드러낸 치아가 가지런하게 빛나고

웃음소리 골목 밖을 도망치듯 빠져 나갑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수선화 피어나

통곡의 바람과 별들의 발자국 얼룩진 강정마을

올레길 걸어 칠십리 구럼비 찾아오지 못한

그리운 것들이 슬픈 날입니다


수애기 헤엄치는 바다

돌담 아래 작은 꽃들의 속삭임

엉또폭포 깊은 곳 열일곱 숫처녀의 봄

호랑이 없는 섬 해군기지 반대

저항하는 것들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동백꽃 뚝 뚝 발 앞에 지고 또 지는

그날 그렇게 죽어간 항쟁의 섬

흔적 없이 사라진 이름들 위로

단단한 눈물이 되어 떨어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깃발은 나부끼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범섬

서귀포 강정기지 해군이 들어오고

섬은 다시 반란의 시작입니다


한라산 떨어져 나온 범섬

분화구에 붉은 산이 목 놓아 부르는

서귀포에 살던 멋진 남자

벌거벗은 아이들이 그리운 날입니다


서로 갈라져 원수가 되었어도

귤이 노랗게 익어 갈 때쯤이면

화해할 법도 한데 끝끝내 적이 되어

형제간 얼굴도 보기 싫지만 

진도 앞바다 삼백사명이 수장되었다는 소식에

범섬 만 바라봅니다 



[필진정보]
김창규 : 1954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한신대학교를 졸업했다. 분단시대문학 동인,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 <푸른 벌판> 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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