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은 예수님께서 백성에게 하시는 일련의 교리의 끝에 해당하며 백성은 주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그르치셨기 때문에 몹시 놀라며 그분을 따릅니다.
어떤 사제, 어떤 주교, 어떤 교리교사,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권위를 주는 그 일관성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압니다. 잘 식별할 줄을 알아요.
또한 예수님 자신이 앞 구절에서 당신 제자들과 사람들 모두에게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하고 경고하십니다. 정확한 말은, 비록 신조어(新造語)이긴 하지만, “사이비 예언자”여야겠지요.
이 사이비 예언자, 유사 예언자들은 어린 양들처럼, 착한 양들처럼 보이지만 약탈을 일삼는 늑대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예수님께서 참된 복음선포자들이 있는 곳과 복음이 아닌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있는 곳을 어떻게 식별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열쇠 말이 있는데, 말하기, 행하기, 듣기가 그것입니다. [...] 이런 대립은 왜일까요? 이 사람들은 말하고, 행하지만 다른 태도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말하기와 행하기의 기초가 되고 토대가 되는 태도가 없어요. 그들에게는 듣기가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매를 보고 너희는 그들을 알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압니다. 말이 많아요.
말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고 위대한 일들을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열린 마음은 없고, 하느님 말씀의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짓 예언자들”이며 “거짓 목자들”입니다. ...
[...] 이 사이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반석,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반석이 없습니다. 이 반석 없이는 예언을 할 수 없고 집을 지을 수도 없지요. 하는 척할 뿐인데 마침내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 목자들”입니다. 세속적인 목자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침묵을 두려워하며 어쩌면 너무 많이 행하기도 하는 목자들이거나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들어서 행할 능력이 없고 말하는 것으로 행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좇아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출발하여 행하지요.
이 세 단어를 기억합시다. 행하기, 듣기, 말하기, 이 단어들은 하나의 표징입니다. 오로지 말하고 행하기만 하는 사람은 참된 예언자가 아니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마침내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반석 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반석처럼 견고하지 못한 것이지요.
들을 줄 알고, 들어서 자기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의 힘으로 행하는 사람, 그 사람은 확고합니다. 교회 안에는 비록 중요치 않아 보이는 겸손한 사람이지만 얼마나 많은 이런 큰 사람들이 있는지요! 들을 줄 알고 들어서 행하는 얼마나 많은 위대한 주교들, 얼마나 많은 위대한 사제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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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그라시아 수녀 : 성심의딸 수녀회 수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