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5일 제94차 바티칸시티 법원 사법연도 개시 연설에서 평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진실이 바로서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인류 전체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평화와 정의에 관한 갈망이 우리 안에서 커져 왔다”며 “평화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증언을 해야 할 필요성은 의무가 될 정도로 우리 양심 안에서 강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력과 전쟁으로 절망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강조하시려는 듯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우리는 뜻하지 않게 주님께서 주신 평화의 예언적 메시지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이를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 속 평화의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킨사샤 미사 강론, 2023년 2월 1일)
교황은 콩고민주공화국 순방에서의 강론을 떠올리며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정의를 위한 노력을 전제한다”고 말했다. 평화에는 항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황은 “정의 없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며, 이런 평화에는 공고한 기반도, 가능한 미래도 없다. 정의는 추상적 개념이나 이상향이 아니다”라며 정의를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교황은 “성서에서 말하는 정의란 하느님을 향한 모든 의무를 정직하고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을 이행하는 것”이라며 “정의란 그저 기술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일련의 규칙을 적용한 행위의 결실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이유가 되는 도덕으로서, 공동생활의 모든 영역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모든 사람이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러한 도덕은 특히 사법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책무에 부여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서로 분쟁하는 공동체의 여러 주체 사이에서 깨져버린 혹은 공동체 내부에서 깨져버린 평화를 재건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바티칸시티 법원은 이런 관점에서 작동해야 하며, 민사 또는 형사 분쟁을 조정하는데 교황청의 이윤을 위해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최근 법적 분쟁과 관련 재판들이 늘어나고, 특히 자산 및 재정 운영 영역에서 밝혀진 행동의 심각성도 증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서 우리는 확실하게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을 지양해야 한다. 핵심은 소송이 아니라 소송을 일으키고 고통스럽지만 소송이 필요하게 만든 사실과 행동들이다.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이런 식의 행동은 하느님의 빛을 비추는 교회의 유효함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또한 “때로는 교회의 얼굴을 더럽히고 신자 공동체에 추문을 일으키는 행동을 밝혀내는데 재판이 필요하기도 하다”면서 이는 “가장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데 냉정한 관료주의적 도덕”(교황권고 「사랑의 기쁨」, 312항)을 지양하는데 도움을 주는 엄격한 식별 훈련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정의와 자비 사이의 필수적 균형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공평이라는 규범은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이번 발언은 교회 공동체 내부라고 해서 단순히 추문을 피하고자 사실을 명백히 밝히는 일을 회피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교황청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런던 부동산’ 횡령이나 최근 ‘루프니크 사태’ 등과 같은 성직자에 의한 성범죄라고 해서 사실을 밝혀내는데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위해 2021년 주교, 추기경도 교황청 재판에 회부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고위성직자들의 면책특권을 폐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탈리아어판 < Vatican News >에서는 런던 부동산 사태와 관련해 열리는 공판을 매번 보도하면서 언론보도를 통한 투명성 재고에도 힘쓰고 있다.